"소설 월한(越韓) 협력기금"
 
 
 
1996. 3. 26
 

하노이 대학은 월남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베트남 최고의 명문 대학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는 재정사정이 어려워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이 대학의 한 교수가 연구비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한국의 공익재단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되었다. 경쟁적인 심사과정을 거치면서 이 교수가 제출한 연구계획서의 내용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은 결과였다. 이러한 성과는 즉각 대학 본부에 보고되었고 대학 당국은 이 지원금을 바탕으로 기금을 설치하여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절차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같은 대학의 일부 교수들이 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연구비를 준 한국 공익재단의 우두머리가 월남전에 파병된 경력이 있는 군 장성 출신이라는 사실을 문제 삼고 나섰다. 월남참전 당시 이 장성은 작전 중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여 물의를 빚은 경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역 후 그는 과거를 반성하고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는 하노이 대학에 대규모의 연구기금을 제공하면서 과거 자신의 군 경력과 연관된 불행한 기억을 다소나마 지울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연구비를 전달하는 행사가 있던 날 그는 감상에 젖어 한국과 월남의 불행한 과거를 언급하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협력관계에 대해서 말하면서 장미빛 전망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취재를 나온 일부 베트남 언론은 이 군 장성 출신의 발언과 경력을 문제 삼아 한국의 국수우익이 아직도 베트남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여 제국주의적 팽창을 미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 보도는 베트남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에 불을 질러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하노이 대학 내의 반대파 교수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어렵사리 연구비를 따온 교수는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내외의 논란 끝에 하노이 대학은 연구비를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교수들 간에는 매우 심각한 균열이 생겼고, 또한 학생들도 동원이 되어 양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학교 꼴은 엉망이 되었고 대학의 재정은 더욱 쪼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하노이 대학과 경쟁관계에 있던 사이공 대학은 이런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연구비가 한국에 반환되자마자 이를 다시 유치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벌여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사이공 대학은 이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로부터 수년 후 하노이 대학은 사이공 대학의 경쟁상대가 더 이상 되지 못하고, 이류대학으로 전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