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분야 : 피플/칼럼
등록 일자 : 1997/12/18(목) 19:20
 
[특별기고]유석춘/축배 들 여유 없다
 
치열했던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었다. 1998년 2월부터 5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새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공식적인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은 아직 두달여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으로서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당장 너무나 많다.

▼ 경제 살려야 할 당선자 ▼

우선 당선자는 선거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정치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가 후보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 아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보들의 정책은 모두 대동소이해서 금융실명제는 보완되어야 했고, 북한은 연착륙시켜야 했으며, 과외는 뿌리뽑혀야 했다. 정책의 차별성이 없었던 만큼 인물에 대한 평가가 선거의 주된 관심이었다. 특히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했다.

상대방 깎아내리기 식의 선거운동이 남긴 후유증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선거의 막바지를 장식했던 TV광고 내용을 보면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 다른 후보 모두 인격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던 사람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문제가 있다면 대한민국 자체에 문제가 있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는 역설이 사실일 뿐이다. 따라서 당선자는 선거과정의 상대방 흠집내기를 반성하고 탈락한 후보와 그를 지지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근소한 표차로 탈락한 후보를 지지한 국민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며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다음으로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은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현직 대통령과 협의하여 국정을 혁파하고 추락한 대외신인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백방으로 기울여야 한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와 하루 빨리 만나 도움을 청해야 한다. 또한 경제의 구조조정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의 어려움은 이미 겨울 추위를 넘어 뼛속까지 파고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국정 장악능력이 이미 상당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의 확정과 함께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할 것 또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만약 당선자가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기회삼아 측근에 대한 논공행상이나 서두른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의 형편이 더욱 어려워질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선자를 도왔던 집단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앞으로 5년간 이 나라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 「희망찬 5년」 제시해야 ▼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새 대통령이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함을 우리는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30여년을 성장하던 경제가 갑자기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기와 함께 당선자는 임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당선자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한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지도자를 선택하여 왔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나라를 세워야 할 때,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경제를 일으켜야 할 때, 억압적인 정치권력으로부터 민주화를 이룩해야 할 때 우리 국민은 올바른 선택에 성공해왔다. 15대 대통령 당선자가 무한경쟁의 21세기에 우리나라를 온 세계에 우뚝 세울 국민의 올바른 선택으로 기록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유석춘<연세대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