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독재타도" 불굴의 기관차들
운동권-비운동권으로 첨예하게 대립

 

한국의 현대사는 우연히도 대충 10년을 단위로 뚜렷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전개돼 왔다. 48년 정부를 수립하고 60년 4·19가 터지기까지의 대충 10년은 건국을 위한 '시련의 시기'였다. 이 기간은 특히 3년에 걸친 전쟁의 상처가 민족 내부에 깊숙이 각인되면서 분단이라는 장애를 우리가 짊어지게 된 기간이다.

이 시기 대학을 다닐 나이의 젊은이들, 그러니까 지금 나이로 대충 60대가 된 이들은 모두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체험했고, 전후에는 절대빈곤이라는 생존의 문제와 싸우며 나라를 지탱해 온 신화적인 존재들이다. 이 세대 젊은이의 막둥이들이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이룩한 업적이 바로 이승만의 독재를 무너뜨린 4·19인 것이다.

다음 10년, 그러니까 61년 5·16부터 72년 유신의 시작까지 한국은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모색의 시대'였다. 이 시기 우리는 경제개발을 통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고, 그에 따라 한일 국교정상화 월남파병 등 국제적인 차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대학을 다니던 젊은이들, 지금 나이로 대부분 50대에 속하는 이들은 굴욕적인 외교와 돈벌이 파병을 반대하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6·3세대가 남긴 뜻깊은 유산이다.

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60년대의 모색으로부터 상당한 성과를 얻은 박정희는 79년 암살되기까지 다음 10년을 '성장의 시대'로 만들었다. 국민은 유신이라는 권위주의와 고도성장이라는 경제발전을 맞바꾸어야 했다. 그 결과 기업은 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을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게 됐고, 때마침 진행된 남북간 군비경쟁은 중화학공업이라는 새로운 활동무대를 기업에 제공했다.

당시 대학에 다니던 지금의 40대는 이러한 성장시대를 비판하던 유일한 집단이었다. '긴급조치' 혹은 '위수령'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권위주의의 통제수단과 맞서 이들은 자유와 인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캠퍼스는 '학도호국단'이라는 준군사조직이 장악하고 있었고, 열악한 노동자의 생존권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60년대의 전태일과 같은 불행한 젊은이들의 숫자는 70년대 들어 하루하루 늘어만 갈 뿐이었다.

선배세대와는 현격하게 성격 달라

긴급조치 세대의 선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야학을 개설해 훗날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경제적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포부를 펼치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두가지 선택은 반드시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야학을 통한 현실의 이해는 사회활동을 기름지게 하는 보완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80년 '서울의 봄'이 남쪽 광주의 피비린내에 의해 부정되면서 시작된 또 다른 10년은 70년대식 성장과 저항의 공존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현재 30대이고 당시 80년대 학번인 이들 60년대생, 이른바 ‘386세대’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급진적인 일부 학생들은 70년대까지 금기시 되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심지어는 북한의 주체사상도, 변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은 첨예하게 분리되어 양자택일의 관계로 치달았다. 광주의 원죄를 단죄하기 위한 '고육지책'은 87년 민주화가 이뤄지기까지 계속됐고, 대학사회 나아가서 한국사회는 분열과 대립의 몸살을 앓게 됐다.

이제, 민주화가 시작된지도 이미 10년을 넘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분열과 대립 그리고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노사간의 단절과 갈등은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시련을 겪으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갈등과 단절을 극복하고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새로운 10년을 맞게 할 2000년대 학번의 역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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