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분야 : 피플/칼럼
등록 일자 : 2000/02/07(월) 19:48
 
[시론]유석춘/앞길 험난한 낙선운동
 

4월 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이 정가를 달구고 있다. 변화를 원하는 쪽에서는 기대가 크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과연 시민운동은 성공할 것인가. 현재까지의 상황 전개로 보면 시민운동은 일단 문제 제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의 염증을 배경으로 언론의 지원을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언론의 지원이 총선이 치러지는 4월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낙천 낙선운동이 투표장에서의 선택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변수는 선거법 개정이다. 개정되는 선거법이 허용하는 선거운동의 범위와 방법에 따라 시민운동의 호소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선거운동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현재의 선거법이 사용자 단체에도 참여를 허용하는 쪽으로, 나아가 모든 사회단체에 참여의 문호를 개방한다면 현재 시민운동이 차지하고 있는 독점적 위상은 크게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공익의 대변자로 스스로 자임한 시민단체와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결성된 이익단체,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비영리 비정부 단체로 분류될 수 있는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와 같은 각종 연고 집단이 서로 뒤엉켜 선거운동에 개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원단체나 종교단체까지 가세하면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과 같은 선거운동이 전개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렇다고 시민운동단체와 노동조합만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노조는 되고 사용자단체는 안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또한 시민단체는 되고 이익단체는 안된다는 논리 또한 설득력이 없다. 시민단체는 보편적 ‘공익’을 추구하고 이익단체는 파당적 ‘사익’을 추구하니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익을 추구한다는 시민단체의 역할을 누가 부여했는가.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자임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익단체도 얼마든지 공익으로 스스로를 포장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기업인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와 ‘국가를 위해 근로자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 가운데 무엇이 옳은가. 나아가 ‘사회발전을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회발전을 위해 강원도가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 가운데 어느 것이 그른가. 절대적인 기준은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개정된 선거법이 어떻게든 마련되었다 치자. 다음에는 선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수들이다.

우선 공천을 생각해 보자. 이른바 ‘명단’에 들어간 정치인 가운데 여당에 소속된 경우와 야당에 소속된 경우는 선택의 폭이 너무 다르다. 여당은 물갈이를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든지 있다. 반면에 야당은 공천에서 배제된 경우 은퇴하거나 아니면 무소속 출마뿐이다.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시민단체와 여당이 담합했다는 야당의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명단’에 들어간 사람이 정부의 요직 혹은 정부의 산하 단체에 낙하산 식으로 내려갈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걸 밝히지 않으면서 선거에만 개입하겠다는 생각은 즉흥적인 사고의 결과일 뿐이다.

마지막 변수는 선거운동의 현장이다.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유권자와 ‘명단’에 포함된 정치인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만큼 심각한 물리적 충돌의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만약 사태가 폭력의 행사로까지 비화된다면 선거판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치달을 것이다.

아, 걱정된다.

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