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대담 : 류시춘, 김동춘
2000-10-10 오후 8:55:18 게재
<창간 대담>

우리 시대의 진보와 보수, 어떻게 볼 것인가

일시 : 2000. 9.25. 14:00
장소 : 내일신문 편집위원실
참석 : 류시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조교수
사회 : 방인철 편집위원

사회자 : <내일신문>은 소유와 노동의 통일을 목표로 한다. 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균형감각을 신문의 목표로 하고 있다.
금년 들어 남북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4·13총선 과정에서 지식인 사회의 총선 참여 문제가 논쟁
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빛은행 사건이나 선거사범 수사문건 공개를 둘러싼 복잡
한 정세가 형성되고 있다.
<내일신문> 창간을 맞아 대담을 마련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시대의 보수와 진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살펴보고 <내일신문>의 방향에 대한 두 분의 의견을 들어본다는 의미도 있다.
류시춘 : 분위기를 보니 나를 보수 진영의 대표로 선발하신 것 같다.(웃음) 보수와 진보는 일반
적으로 좌와 우로 구별되는데, 나는 보수는 아니지만 우다. 그래서 보수로 분류하는 것 같다. 최근
들어서는 나를 신자유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이들까지 있다. 신자유주의라면 질색인데.(웃음)
김동춘 : 좌/우 구도와 보수/진보 구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강조하는 컨서버티즘, 자
유를 강조하는 리버럴리즘, 평등을 강조하는 소셜리즘, 이 3자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
다.
이를테면 리버럴리즘은 컨서버티즘의 눈으로 보면 진보지만, 소셜리즘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 반
동이 된다. 고 문익환 목사나 장준하씨는 소셜리스트가 아니라 전형적인 리버럴리스트였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진보적 인사로 분류되지 않는가.
사회 : 류 교수가 주도하는 잡지 <전통과 현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인가.
류 : 신자유주의는 한마디로 개인 능력껏 살라는 얘긴데, 우리 전통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동체적 전통이 강하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는 아니다. 좌나 우의 시각이 아니라, 한국식 공동체를
꿈꿀 수도 있다. 공동체에는 계급공동체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 IMF 총회 반대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 : 여기에는 국제 NGO 그룹, 환경주의자, 아니키스트들까지, 아주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하고
있다. 자본이 주도한 지구촌의 폐해 때문에 손을 잡은 것이다. 이들은 오는 20일 서울 아셈회의에도
온다고 한다. 뚜렷한 대안도 없이 무책임해보이기도 하지만, G8이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에
도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 10년 전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고 쓴 사람도 있
지만, 우리나라는 현대사에서 아주 독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장기수 송환을 둘러싼 논란은
해방공간의 좌우대립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김 : 해방공간이 좌/우 대립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민족세력과 친일세력이 좌/우 대립과 맞물려
있었다. 북에서는 이를 민족대 반(反)민족으로 봤고, 남한에선 좌/우 대립으로 봤다.
이후 남한은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자유주의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국가보안
법>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좌파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 통일이 된다면 극우/
극좌로 대립했던 사회가 조금은 다양한 사회로 바뀔 것이다.
사 : 해방공간의 양민학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 문제를 바로 보자는
움직임도 있는데.
김 :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다. 공권력, 또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일그러진 역사가 분명히 있
었는데, 그런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지 않고 어떻게 국가의 정통성을 말할 수 있는가. 요즘 들어 노근
리 문제나 제주 4·3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로 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본
다.
사회 : 류 교수는 장기수 송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류 : 어쨌거나 … 우리가 손해봤다는 얘기들은 많다.
사회 : 시민단체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류 :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선거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이 마
치 권력기관처럼 행동하고, 그 직후 그 좌장급들이 연달아 사고를 치고 … 이건 책임없는 다수의
횡포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선단식 조직운영은 안된다.
사회 :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시민단체들이 왜 조용하냐"고 썼는데.
류 : DJ가 잘 못하고 있는데, 왜 별 말이 없냐는 얘기다.
김 : 시민운동 6년 동안의 좌절 속에 최종적으로 도달했던 차선책이 총선연대였다. 아직 우리나
라는 정책을 가지고 정당을 평가하는 나라가 아니다. 도덕성 시비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시민운동에 시민이 없는 이유는 운동을 잘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참여에서 오는 피해의식 문제
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단식 운영, 문어발식 확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당들이 제 역할을 못하
기 때문에 모든 민원이 시민단체로 몰리고, 그러다 보니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사회 : 의사파업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류 : 문제는 정부다. 나도 얼굴에 바르는 연고 하나 사는데 4시간 동안 돌아다니고 나니 '준비
안된 의약분업'이라는 판단밖에 안 들었다.
김 : 시민단체가 의약분업을 주장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이를 관철할 만한 힘이 없다.
류 : 그래도 송 자 장관 쫓아낼 때 보면 힘이 있는 것 같던데.
김 : 그건 메이저 언론들이 반(反) DJ전선 차원에서 나섰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 : 98년 최장집 교수 사건을 어떻게 보나.
류 : 우리 사회도 사회민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최 교수가 자기
사상을 떳떳하게 인정했어야 했다.
사회 : 언론이 특정인의 사상검증을 할 수 있다고 보나.
김 : 조선일보식은 곤란하다. "너 빨갱인데, 왜 아니라고 하느냐" 식은 50년대 빨갱이사냥과 다
를 바가 하나도 없다.
사회 : 공인이 되려면 자기 사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나.
류 : 사회민주주의는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떳떳하게 인정해야 한다.
김 :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하면 너 죽으라는 얘기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 강령 들
고 나오면 100% 떨어지게 돼 있다.
사회 : 신자유주의의 장점은 투명하다는 것이다. 대우차 매각 실패를 봐도 그렇다. 투명하지 않
기 때문에 안 사겠다는 게 아니냐. 류 교수의 '아시아적 가치'는 투명성을 어떻게 보나.
류 : 아시아적 가치는 봉건성에 기초한 게 아니라 공동체주의에 기반한다. 공동체를 한다고 투명
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투명성은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도 보장돼야 한다.
사회 : 그렇지만 모든 비리의 뿌리에 연고주의가 있지 않나.
류 : 연고를 나쁘게만 쓰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정보화사회가 아무리 발달하고 인터넷이 퍼져도
중요한 정보는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게 돼 있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실패했는데, 우리의 경우 전통적 연고집단을 활용하면 아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사 : <내일신문>에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류 : 모든 일을 국민들이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김 : 우리나라 언론지형이 너무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 중도 혹은 중도좌파가 바람직하
다고 생각한다. 메이저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부분을 밝히는 언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