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치는 공자 해석… 전문가 3인 좌담

 
입력 : 2001.02.27 19:45 34'
 

## 유교에 대한 애증은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

고전읽기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유교비판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가하면, 도올 김용옥의 TV논어 강의가 인기를 모은다. 최근들어 도올의 TV강의에 대해선 그의 공자해석이 옳느냐, 그르냐는 논란이 학계는 물론 평범한 직장인들 사이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전읽기의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바람직한 고전읽기의 방향을 모색하기위해 전문 학자들로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최영진(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최준식(이화여대 대학원 한국학과)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교수가 얘기를 나눴다. (편집자주)


▲최준식= 최근 유교에 대한 애증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국내에선 유교를 체계적으로 비판, 극복해보려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근대 이후 유교는 망국지교로 인식됐고, 여성 비하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요즘 공자에 대한 접근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엽기적’ 비판까지 나올 정도로 감정적이거나, 아니면 좋은 점만 찬양하는 극단적인 태도로 나뉜다. 하지만 유교는 우리 삶의 뿌리 아닌가. 도올의 논어강의는 바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촉발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영진= 유교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는 현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구한말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는 유교를 부정하면서 서도서기론을 주장했고, 박은식 선생도 조선조를 이끌어온 주자학이 통치자 중심의 유교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유교를 만들어야한다는 유교구신론을 펼쳤다. 현상윤 전 고려대총장은 해방직후 펴낸 ‘조선유학사’에서 유교가 정신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에 경제발전을 등한시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도올 논어강의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서구화된 것같지만 삶의 양식으로는 유교나 동양사상이 살아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유석춘= 대학에서 학생들은 일상적으로 형, 아저씨, 선생님, 언니 등 호칭을 부르는데, 모두 유교적인 가족관계 용어다. 스펀지에 물이 차있듯, 유교가 전 사회에 퍼져있다. 서구에서도 유교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유교적 인간윤리가 유효하다는 얘기다.

▲최준식= 서구 정치학자중에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넘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해지고, 1만달러를 넘어서면 자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다고 얘기한다.

▲유석춘= 도올 강의에 대한 비판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자기 전공영역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학자들이 대중을 향해, 그리고 학문간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데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기 영역에 안주하면서, 학문간 영역을 가로지르는 작업을 아무도 안하는데 도올이 혼자 하고 있다. 도올이 인기를 모으면서 그와 비슷한 학자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견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한 측면이 크다.

▲최영진= 그런 점에서 도올을 인정해야 하지만 강의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 특별한 해석이 아닌데, 자기만 아는 특별한 해석인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인과 민을 구별해야한다는 주장은 중국 학자들이 수없이 했는데, 자기가 독창적으로 제기한 것처럼 말한다. 동료교수들은 고전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도올은 자기 입맛에 맞는 해석만 택한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학문의 대중화가 활발하지 못한 것은 우리 학계의 수준이 아직 전문적 학술지식을 대중화할 만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최준식= 목소리 톤이나 의상 등이 튄다. 노자 강의 때는 전통적 해석에서 어긋나는 것은 거의 못봤다. 그러나 이번엔 과대포장하는 것이 많다. 학계는 싫어하는데, 일반인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공자는 지행일치를 항상 가르쳤는데, 그게 안돼 보이는 사람이 TV에 나와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 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도올을 ‘아카데믹 엔터테이너’로 부를 수있을 지 모르겠다.

▲유석춘= 도올은 강의에 앞서 책을 미리 준비하고, 판매에 활용한다. 학자라기보다 비즈니스맨같다. 영국 학생들은 앤토니 기든스를 비슷한 일을 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본다. 한 분야를 깊이있게 들어가지 않고 여러 군데를 섭렵한다.

▲최영진= 도올이 유학의 본산인 성균관대 교수들도 자기 강의를 훌륭하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료 교수끼리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다 그런 적 없다고 한다. 도올이 학문을 대중화했다고는 말할 수있으나, 강의실에서조차 할 수없는 비속어를 쓰면서 학문을 저급화한 게 아닌가. 코미디도 아니고…. 도올은 학문적으로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 번역이 중요하다면서도 막상 자기 박사학위논문은 번역하지 않는다. 왕부지의 주역해석을 주제로 논문을 썼는데, 번역이 그렇게 중요하면, 자기 논문부터 해야하지 않나.

▲유석춘= 최근 공자 뿐 아니라 노장 철학 등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서구에선 근대로 진입하면서 개인이 부각됐는데, 탈근대로 넘어가면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인 간(間)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간주관성은 바로 유교에서 얘기하는 인간관계다. 이런 네트워크 문제에선 유교나 도교같은 동양사상이 유리하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노장철학이 간주관성의 문제에서 앞서있다. 유교철학은 관계의 철학아닌가.

▲최준식=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뜨거운지 잘 모르겠다. 기독교와 비교하면, 동양사상은 아직 소수 사람들만 관심있는 게 아닌가.

▲최영진=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특히 상업적 영역에서 뜨겁다. 책이나 TV강의나 그런 것 같다. 역사적으로 중세 말기에 지성인들이 중세 극복의 논리를 고대에서 찾았다. 르네상스의 사상적 모태는 고대 그리스였다. 근대 극복의 이론적 모델을 중세적 논리에서 모색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최준식= 유교는 다른 종교보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장점이 있다. 소학, 명심보감, 동몽선습에서 사서, 주역까지 일관된 교육체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유교의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를 길러내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없다. 군자 교육 프로그램은 고전교육과 한문교육이 골자를 이룬다. 논어나 맹자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훌륭한 내용이 많지만 일반인들이 가까이 가기 어렵다. 현대인의 삶과 연결될 수있는 내용만 뽑아 다이제스트 유교고전을 만들어야한다. 교재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하고, 만화도 끼워넣고, 강의를 인터넷에도 띄워야한다. 우리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안시킬 부모가 있겠는가.

▲유석춘=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간관계의 다양성은 21세기 사이버 커뮤니티의 윤리로 딱 맞는다. 유교는 상하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도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예턴대 인터넷 동창찾기 사이트인 ‘아이 러브 스쿨’의 대유행은 학연이란 연고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20~30대 위주인 ‘아이 러브 스쿨’ 이용자들이 나이들면 지연이나 혈연이 사이버 공간에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교윤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활용될 지는 앞으로 주목해야한다.

▲최영진= 유교의 본질은 균형성의 추구에 있다. 주자학과 양명학을 비교하면, 주자학이 오래 가는 것도 균형성 확보에서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균형을 추구하는 유교는 오늘날 정신 가치에 대한 물질가치의 우위를 잡아주는 지침으로 기능할 수있다. 조선 유학에선 홍대용이나 최한기처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태학적 사고를 끌어낼 수있다. 유교의 대중화가 어려운 것은 운동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성균관이 유림을 대표하지만, 유림을 전부 장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노력은 한다. 100여종이 넘는 논어 해설서가 나왔다는데, 성균관대판 표준 번역본을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정리=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