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분야 : 피플/칼럼
등록 일자 : 2001/04/10(화) 18:39
 
[시론]유석춘/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라
 

모처럼 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오랜만에 한국의 여론을 하나로 모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진보’ 언론은 무차별적으로 ‘보수’ 언론을 공격하며 여론을 양극화시키고 있었다. 더구나 그런 공격의 고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친일 경력’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지자 소위 ‘보수’와 ‘진보’는 전혀 차별성이 없는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

▼균형잃은 '친일' 비판▼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른바 ‘진보’의 논리에 따라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이들의 주장은 ‘보수 언론은 친일 경력 때문에 오늘날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해 있다. 왜냐 하면 친일 경력이 독재 권력과의 야합을 가져왔고 그 현실적 결과가 현재 ‘보수’ 언론이 누리는 시장 지배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 언론은 권력과의 유착으로 기득권을 확보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논리의 외연에는 ‘보수’ 언론의 보도가 마땅히 친일적이거나 친독재적일 것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확인되고 있듯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 ‘보수’ 언론은 모두 하나같이 일본 우익의 역사 인식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진보’ 언론과 전혀 질적인 차이가 없다. 사정이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 ‘친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문제를 삼는다면 그 한계는 어디까지로 설정해야 하는가.

논의의 편의를 위해 대학 교육 분야의 예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서울대와 고려대 그리고 이화여대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대학들이다. 이들 대학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우리는 절대 과소 평가하지 않는다. 산업화는 물론이고 남녀평등이나 민주화에 기여한 이들 대학의 공로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 학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일제시대의 ‘친일’ 문제와 정면으로 부닥치게 된다.

서울대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으로 일제의 ‘식민사관’을 대변하던 고등 교육기관이다. 또한 고려대의 설립자나 이화여대의 초대 총장은 친일활동을 했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판이 있다고 해서 이들 대학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명문 대학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긴 역사를 종합해 균형 있게 평가하면 이들 대학은 역시 ‘과’보다는 ‘공’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의 10년 동안에 벌어졌던 일만을 기준으로 친일을 평가한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명문대는 모두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 하면 당시 존재하던 모든 대학은 학칙의 제1조로 ‘황국신민의 육성’을 채택해야 했으며, 학생과 교수는 모두 강의실에서 ‘황국신민의 서사(誓詞)’를 외워야만 했다. 오늘날 민족 사학의 양대 기둥으로 평가받는 ‘보성전문’과 ‘연희전문’은 일제 말에 각각 ‘경성척식전문학교’와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이름을 바꿔 일본의 식민지 교육에 협조해야만 했다.

만약 최근 설립된 신흥대학이 역사가 오랜 명문 대학들의 부분적인 친일 경력을 문제삼아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부당한 것이니 이제부터는 신입생을 공동으로 선발하자고 주장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까. 나아가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이나 ‘신사참배’를 한 사람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오랜 역사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영’과 ‘욕’의 동시적 존재를 어느 한 가지만 편파적으로 선택해 문제삼는 일은 결코 균형 잡힌 비판이 될 수 없다.

▼'밝은' 과거마저 부정해서야▼

‘친일’에 대한 평가는 넓고 깊은 시야가 필요하다. ‘어두운’ 과거를 부정하고 호도할 필요도 없지만, 어두운 과거 때문에 ‘밝은’ 과거마저 부정하고 폄하할 필요는 더욱 없다. 양자를 균형있게 평가할 때에만 미래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 찾아진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아픈 상처를 보듬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지혜를 모으는 사명은 바로 언론이 맡아야 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사건이 제공해 주고 있는 살아 있는 교훈이다.


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