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82돌 아침에]유석춘/한국의 대표얼굴 돼라
 
 
발행일: 2002-04-01    기고자: 유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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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식민지 치하에서 탄생한 1920년 4월 1일의 동아일보는 ‘主旨를 宣明하노라’라는 창간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창간정신을 밝히고 있다. 첫째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노라’, 둘째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셋째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바로 이 창간정신이 그로부터 지금까지 한 세기 가까이 이어져오며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투철한 시대의식이었고 사명감이었음을 지금의 동아일보는 제호 옆에 선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동아일보를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로, 또한 우리의 언론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이러한 동아일보의 역할에 더욱 큰 기대를 걸게 한다.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분단이라는 멍에를 안고 출발한 우리가 같은 조건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화의 과업을 차례로 이룩할 수 있었던 까닭에는 바로 동아일보와 같은 민족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 최근 논란이 전혀 없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언론이, 특히 동아일보가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감히 어느 누가 송두리째 부정할 수 있겠는가.

주권을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에는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여 수많은 고초를 겪었고, 전쟁과 분단이 짓밟은 황폐한 시대에도 결코 문화주의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엄혹한 독재와 동원의 시대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작지만 힘찬 걸음을 내디뎌 온 대표적인 신문이 바로 동아일보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를 지켜 온 동아일보의 이러한 기상과 용기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 누구도 그 험하고 복잡한 현대사를 무사히 헤쳐 나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우리의 성공이 오히려 현재는 우리를 혼란과 갈등, 그리고 대립과 편가르기로 몰아가고 있다. 산업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대로, 그리고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대로 자신의 희생과 노고만을 내세우며 상대방의 주장과 입장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굶주림으로부터의 탈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은 이제 과거의 기억을 부정하면서 서로를 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갈등과 반목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낱 허황한 구호가 될 뿐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반목과 불신을 우리는 어떻게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 다양한 견해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복잡한 이해관계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공개하고 토론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공개와 토론의 작업은 언론이 선도하여야 한다. 동아일보의 역사가 터잡아 놓은 ‘여론의 수렴과 쟁점의 부각’이라는 언론의 역할이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매체는 바로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문화주의를 제창’한 언론이 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동아일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러한 과정이 특정한 집단의 견해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홍보가 된다면 정말이지 곤란하다. 행정을 책임진 정부는 물론이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나 정당 그리고 최근 급격히 중요성을 더해 가는 다양한 시민단체, 나아가서 기업인과 근로자, 그리고 여성 및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 등은 모두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들이다. 이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요구를 언론은 객관적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그로부터 출발하여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날의 총체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동아일보의 각별한 노력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한국의 발전에 기여해 온 동아일보의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되어 동아일보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리의 자랑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창간 82주년을 계기로 동아일보가 더욱 더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문화주의를 꽃피우고 민주주의를 창달하는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우리 국민 모두와 함께 간절히 소망한다. 동아일보의 이와 같은 역할이야말로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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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종: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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