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끼리끼리 개혁'의 한계
 
대통령과 검찰의 수사코드 … 다른 집단만 겨냥해서는 곤란
 
▲ 유석춘/연세대 교수

또다시 코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엔 개혁의 코드가 아니라 수사의 코드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며 ‘눈앞이 캄캄’해서 재신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던 대통령 측근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은 개인 비리로 축소되고 있다. 반면에 야당의 정치자금 수수는 구조적 문제를 치유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수사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
취임 초에는 개혁을 위해 언론과 검찰을 포함한 모든 기득권층과 긴장이 필요하다던 대통령이, 그래서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유행어까지도 만든 장본인이, 이제는 언론사 간부를 모아놓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설득을 한다. 검찰이 대통령의 수사코드 주문에 화답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이른바 개혁을 위한 코드가 인사에서만 문제가 되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정치자금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방향은 물론이고 언론의 보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도덕과 번영의 창조’라는 부제가 붙은 후쿠야마의 책 ‘신뢰’는 1995년 처음 출판된 이래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은 문화적 전통을 가진 고신뢰 사회와 그렇지 못한 저신뢰 사회를 구분한 후, 고신뢰 사회에서는 전문화된 대기업이 등장하여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반면, 저신뢰 사회에서는 폐쇄적인 가족경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번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98년 ‘마음과 사회의 진화 게임’이라는 부제를 붙여 출판된 야마기시의 책 ‘신뢰의 구조’ 역시 기본적으로 신뢰에 관한 후쿠야마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내 집단에서 ‘안심’할 수는 있어도, 모르는 사람 혹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 경계하기 때문에 일반적 ‘신뢰’의 형성을 파괴한다고 설명한다.

야마기시의 책은 ‘끼리끼리 공유하는 안심’과 ‘타인에 대한 적극적 신뢰’가 서로 역설적인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 즉 코드가 다른 상황에서 사람들은 안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반면에 사회적 불확실성이 적은 상황, 즉 코드가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안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필요성은 절실하지 않다. 따라서 내 집단 선호 그리고 그에 따른 외집단 배척을 계속하는 한 ‘끼리끼리 공유하는 안심’ 때문에 ‘타인에 대한 적극적 신뢰’는 형성될 수 없다.

신뢰의 구축을 위해서는 결국 코드가 맞는 집단 내부의 결속보다는 코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어 외부와의 관계를 확장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른바 코드 맞추기를 통한 끼리끼리만의 개혁으로는 코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끼리끼리만의 개혁은 끼기끼리만의 안심을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야마기시는 일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간곡하게 설파하고 있다.

물론 이 충고는 우리에게도 매우 시사적이다. 오늘날 추진되고 있는 개혁이 코드가 다른 집단만을 겨냥한 나머지, 개혁주도 세력 내부의 결속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혁을 집단주의의 벽에 가두는 일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충고는 인사에도 해당되고 수사에도 해당된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정치자금에 관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다.

(유석춘·연세대교수·사회학)

 
입력 : 2003.11.05 17:4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