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더 우울한 총선 이후
 
3당 혼전 가능성 제일 높아 … '되는 것 없는' 지난 1년의 연장
 
▲ 유석춘/연세대 교수

4개월 후의 총선에 의해 구성될 17대 국회는 지금까지의 어떤 국회보다도 정치적 비중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임기를 4년 남겨 둔 노무현 정권의 진로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대통령이 스스로 제기한 재신임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로서 4월의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중요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심각한 변수는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선발하느냐 하는 문제에 합의가 없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선거법 개정의 시한을 국회가 무시하며 위헌을 초래한 황당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규칙이 마련되지 않은 선거에 참여할 정당의 틀도 확정적이지 않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으로 한나라당이 분당으로 가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심 또한 팽배해 있고, 시민단체는 위헌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당선 운동을 강행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심지어 선거운동의 공정한 진행과 선거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마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작업은 4월 총선의 정치적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이하 열우당)이 의석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나리오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열우당이 영남에서 한나라당, 그리고 호남에서 민주당과 각각 최소한 백중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 및 중부권에서의 선전이 기정 사실로 되고 그 결실은 노무현 정부의 안정적 국정 운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또한 간접적으로 확보되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이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열우당에 대한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한나라당이 현재와 같이 의석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나리오이다. 지난번 총선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영남을 석권하고 수도권에서 선전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재신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이 불가피해져 정국은 격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도와주는 결과”라는 대통령의 언급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염려한 결과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 역시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지리멸렬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한나라당, 민주당, 열우당 누구도 원내 의석의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열우당이 영남과 호남의 일부를 잠식하고, 중부권 및 수도권을 세 당이 분점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이 경우 세 당 가운데 두 당의 의석을 합하면 당연히 과반이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정계 개편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러한 이합집산이 진행되면 이를 두고 ‘구국(救國)의 결단’이라고 미화하는 측과 ‘철새와 배신의 정치’라고 폄하하는 측이 또 다시 다투게 될 가능성 또한 높다. 그리고 이 논쟁은 다시 재신임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지난 1년의 상황을 앞으로 4년 더 우리 국민이 감수해야 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 우울하다.

(유석춘·연세대교수·사회학)

 
입력 : 2004.01.07 17:32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