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보험 사기극 정치
대통령, 국민의 善意 악용 … 사기피해는 국민이 부담
 
▲ 유석춘/연세대 교수
보험은 우연한 사고의 발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미리 소규모로 부담금을 갹출해 모아 두었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상당한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위험에 대비하고자 하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보험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사고를 치는 사기꾼이 존재하는 한 선의의 보험 가입자는 그저 ‘봉’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꼬박꼬박 불입하는 보험금이 예기치 못한 나의 위험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아니고 누군지도 모를 엉뚱한 사람의 계획되고 위장된 사고를 보상하는 데 몽땅 쓰인다고 생각해 보라.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탕 잘해서 일확천금을 벌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 때문에 인상된 보험금이나 부담하면서 또 다른 인생 역전의 발판 노릇이나 한다고 생각해 보라.

문제가 심각한 만큼 요즈음 보험은 가입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매우 중시한다. 사고가 있었는지, 건강상태는 좋은지, 범죄기록은 없는지, 재정적으로 수입과 지출이 균형 있고 또한 안정적인지 등등의 문제를 따진 다음 보험에 가입시킨다. 물론 그러한 평가에 따라 보험금의 액수 또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의 기록을 통해 까다로운 평가를 하더라도 보험은 여전히 이를 악용하는 사기꾼의 악의(惡意)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일은 비단 화폐의 유통에만 적용되는 현상은 아닌 듯싶다. 보험을 비롯한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우리는 ‘악의(惡意)가 선의(善意)를 구축’하는 모습을 너무도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정치는 절대 다수 국민이 위임한 선의를 국민의 대표라는 정치인들이 악의로 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국민의 대표 중의 대표라는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설마 하던 국회에서의 탄핵논의를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되짚어 보자.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한편으로 총선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재신임과 연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겠다고 천명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인가. 신문과 방송을 지켜보고 듣던 수많은 국민을 모두 바보로 알지 않는 이상 어떻게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기자회견을 통해 도모한 대국민 사기극은 결국 국회에서의 탄핵안 가결이라는 계획된 사고를 가져 왔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선량한 국민들은 그것이 사기라는 사실조차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결국은 십시일반으로 표를 모아 대통령에게 몽땅 털어 넣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립과 재신임을 연계한 꼼수는 마침내 대통령에겐 회심의 미소를 안겨 주었고, 선량한 국민들에겐 한숨이나 쉬면서 그저 ‘봉’ 노릇이나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보험은 그나마 자발적 선택의 결과다. 당사자가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치는 도망갈 구석이 없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 나아가서 나의 의사에 반하는 선택의 결과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 그런 까닭에 이번에는 제발 국민들이 과거의 기록을 꼼꼼히 따져 다시는 보험사기극에 놀아나지 않는 선택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기극에 의한 보험금 지급은 결국 온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미 당할 만큼 당했다. 그러고도 4년이나 더 남았다.

(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
 
입력 : 2004.04.11 18:15 42' / 수정 : 2004.04.11 19: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