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혁´ 의 잔치판을 시작하라
 
[기획특집] 탄핵 기각이후 한국 정치,경제가 가야할 길
연세대 유석춘 교수 "보수를 제물로 잔치를 벌이다 남미꼴나는 순간이 올 수도"
 
2004-05-17 16:10:59
............................................................................................................................
 

랄랄라라라라~라, 랄랄라라라라~라, 밤~바, 밤~바

‘왕의 귀환’을 환영하는 노래가 흥겹다. 노란 리본에 촛불 든 무리들이 흥에 겨워 덩실거린다. 스스로 인당수에 뛰어 들었던 ‘짱’이 살아 돌아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것도 당신 혼자의 힘 만으로가 아니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구해줬다니 얼마나 좋겠는가. 애간장을 태우며 보낸 지난 63일이 이젠 애틋한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잔치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돌아온 ‘짱’을 위해. 그리고 구해 준 국민을 위해. 물로 뛰어 들어 두 달 잠수를 한 ‘짱’ 덕택에 당신들 노란 무리는 이제 없는 게 없다. 심청이 시각장애인 아버지에게 광명을 주었듯, 돌아 온 ‘짱’은 이제 당신들에게 개혁의 수단을 모두 선물했다.

민의의 전당은 그 사이 ‘올바른’ 구성을 마쳤고, 헌법을 수호하는 법원도 그 사이 국민여론을 감안해 ‘올바른’ 판단을 하는 성숙함을 보였다. 이미 장악한 행정부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터이니, 그 아래 있는 검찰이야 오죽 올바르겠는가. 바야흐로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이 당신들의 수중에 넘어갔으니 이제 남은 일은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개혁을 짓쳐나가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무릇 잔치에는 제물이 필요하다. 구경꾼의 흥을 돋우고 무리의 결속을 다짐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있어야 한다. 죄의 대가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는 울부짖음이 없으면 살아남은 자 아니 죄를 묻는 자의 기쁨과 권위를 보여줄 수 없다. 개혁의 칼에 피 흘리며 죽어 넘어갈 상징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래야 잔치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따라 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 줄 희생양은 과연 무엇인가. 인당수에 뛰어들 때부터 이미 당신들의 사려 깊은 ‘노짱’이 눈여겨보아 둔 제물은 과연 없었을까. 그걸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디 ‘노짱’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이 구해 줄 것을 미리 생각하고 물에 뛰어들기까지 했던 당신들의 명석한 지도자 아니었던가.

개혁이라는 잔치의 흥을 돋우는 제물은 당연히 보수일 터이다. 보수 가운데서도 족벌적 경영으로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며 불필요한 영향력을 키워온 세력이 목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생각 없는 국민들을 경품이라는 미끼로 유혹해 영향력을 늘여 온 신문이야 말로 가장 ‘올바른’ 제물이 될 터이다. 보수 신문을 제물로 삼으면 그 동안 개혁의 발목을 잡던 200만 독자까지도 모두 잔치의 손님으로 돌아설 테니 이야 말로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선택 아닌가.

잔치에 필요한 굿판을 마련하는 일은 물론 떠버리 방송의 몫이다. 노란 무리는 촛불 들고 방송이 틀어 주는 흥겨운 남미의 리듬에 맞춰 덩실 덩실 춤을 추며 관객의 눈길을 끌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순간 높이 쳐든 망나니의 칼이 보수 신문의 목을 가른다. 쓰러진 제물의 피를 돌려 마시며 잔치판은 다시 다음 제물을 찾는다.

아마도 노동자를 착취하며 악질적인 방법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족벌기업, 일제에 부역한 까닭으로 자손대대 기득권을 누리는 민족반역자, 간첩을 색출한 까닭으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비난받는 공안검사,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족의 정기를 더럽힌 실용주의자, 평등한 교육이라는 절대 선을 무시하고 엘리트 교육에 전념해 불평등을 양산한 보수적 교육자들 모두가 하나하나 제단에 올려질 터이다.

귀환한 ‘짱’의 임기가 남아 있는 3년 반 동안 잔치판은 계속되어야 한다. 촛불 든 노란 무리는 물론이고 구경꾼들 모두 잔치판의 파괴에 몸을 떨며 희열을 느껴야 한다. 새벽이 다가 오는 줄도 모르고 광란의 개혁 잔치판에 몸을 맡겨야 한다. 우리 모두 남미의 흥겨운 춤가락에 오르가즘을 느껴야 한다.

마침내 제물의 피와 살이 바닥날 즈음 불쑥 솟은 아침 햇살 아래 잔치판은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 것이다. 폐허가 된 잔치판의 노란 깃발과 촛불은 강렬한 아침 햇살 아래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당신들은 여전히 망나니의 칼이 뿜어내는 피를 기다리겠지만, 이미 관객은 피로에 지쳐 이곳저곳에 널 부러져 있고 주위엔 간밤에 희생된 제물의 살점만이 나뒹굴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잔치가 없었던 옆 동네엔 새 아침을 맞는 기지개 소리가 힘찰 것이다. 당신들의 희생양인 보수 노선을 개혁으로 신봉한 중국은 날고 일본은 뛰는데, 우리만 평등 지상주의 좌파 정권의 개혁이 휩쓸고 간 남미처럼 기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 다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잔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망설이지 말고 잔치를 시작하라. 음악을 틀고 춤판을 벌려라. 망나니에게 제물을 바쳐 피를 뿌리도록 하라. ‘노짱’이 돌아 오셨다.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