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박정희의 제단(祭壇) /유석춘
 
삼십대 초반의 여류작가 심윤경이 최근 발표한 소설 '달의 제단'이 화제다. 조상의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명문 종가에서 서자로 태어나 종손으로서의 의무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좌절을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치밀하게 그러면서도 무섭도록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서자로서 종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피를 이미 절반이나 안고 태어난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기대와 종가의 전통이 쉽지만은 않은 '삶의 조건'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지시로 종가의 사당에 전해 내려오던 고문서 편지 글들을 번역해 조상의 학문과 벼슬 그리고 교제와 가풍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던가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고문서의 내용은 오히려 주인공의 가문이 과거에 얼마나 나쁜 일을 많이 했는가를 고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설의 가장 큰 갈등 구조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종손의 입장과 남들에게 명문으로 알려진 종가의 전통을 당대에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입장이 대립하는 부분이다. 고문서의 내용을 거짓 없이 보고하는 종손을 보며 조상에 대한 평판을 위해 당신 삶의 모두를 바친 할아버지는 격노하지 않을 수 없고, 급기야는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종가의 사당에 불을 질러 잿더미를 만들어 버린다.

'역사적 사실'과 '오늘날의 평가'는 함께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엇갈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미 고인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유신 체제에서 자유와 인권을 억압당한 수많은 운동권 출신들에겐 그보다 더한 나쁜 통치자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체제 아래에서 산업화를 통해 중산층에 진입한 또 다른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가 얼마나 극명하게 다를 수 있는가는 박정희와 견줄 수 있는 두 가지 상황을 검토해 보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는 박정희 시대와 엇비슷한 시기에 마르코스 독재를 경험한 필리핀의 경우다. 다른 하나는 우리보다 더 심한 장기독재를 경험하고 있는 북한이다.

두 경우 모두 60년대까지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았다. 모르긴 몰라도 마르코스 시대의 필리핀 노동자나 김일성 시대의 북한 노동자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우리나라 노동자 모두 뼈 빠지게 일만 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하나는 우리의 노동자들은 필리핀으로 신혼여행을 즐기러 가는데 반해, 필리핀 노동자는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도 불사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엄연한 현실은 박정희의 산업화 정책을 통해 경제적 도약에 성공한 남한으로 지금 대규모 탈북자가 전세 비행기를 타면서까지 넘어오고 있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과 오늘날의 평가는 이렇듯 엇갈릴 수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위 '편 가르기'는 모두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시각을 공존시키는 지혜를 찾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 국회에 상정되고 있는 일련의 '역사 청산' 관련 법안들은 물론이고 '2008년 건국 60주년 : 48년 체제 청산'이라는 더욱 극단적인 프로젝트까지도 집권당 내부에서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불 태운다고 오늘에 대한 평가가 향상될 리 없다. 차라리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말했던 박정희의 비전이 한국의 오늘과 미래를 열었지, 고문서를 불태우고 사당에 불을 질러 과거를 부정한다고 결코 미래가 열리지는 않는다.

숱한 반대 속에도 박정희가 닦아 놓은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움직일 수 있겠는가. 또한 5공 때 지속적으로 축적한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 기술 없이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이 가능이나 했겠는가.

역사에 대한 한풀이를 한답시고 '박정희의 제단'을 불태워 봤자 남는 것은 잿더미와 폐허뿐이다.


연세대 교수 사회학과

[2004/08/04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