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올림픽의 명암 /유석춘
맘껏 응원하는 것만도 축복
인류축제 소외된 극빈국
 
고대 올림픽은 남성들만의 제전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남성들만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대신 여성들에게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여성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미혼 여성들만이 올림픽을 관람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여, 결혼 전의 처녀들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성들이 땀을 흘리며 경기장에서 뒹구는 낯 뜨거운 장면을 아무런 제재 없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여자여도 유부녀는 남성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서인지, 유부녀가 몰래 경기를 훔쳐보면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처녀 시절 남성들만의 경기를 열심히 관람한 여자가 아줌마가 되어 자신의 남편 그리고 남성의 세계를 얼마나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이상한 기준 때문에 고대 올림픽에서 아줌마는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화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작된 근대 올림픽도 사실 따지고 보면 지구상의 모든 이에게 문호를 열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 올림픽 참가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할 수 없는 극빈국이 그러하고, 설사 어렵사리 세금을 털어 선수들을 참가시켰다고 하더라도 올림픽 중계권을 살 수 없어 방송을 생(生)으로 볼 수 없는 극빈국의 국민들이 그러하다.

우리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지만 결국 일장기만 휘날리게 했으니 전 세계인의 축제에 떳떳이 참가하지 못하는 설움이 아주 먼 나라 이야기만도 아니다. 그 설움을 십분 이해해서인지 정부는 남북경협기금으로 북한의 아테네 올림픽 중계권 구입을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북한은 돈이 없어서 지금까지 올림픽 중계를 생방송하지 못하고, 일종의 해적 방송으로 몰래 보거나 혹은 경기가 끝난 후 필요한 방송을 재방송의 형태로만 시청하는 형편이었다.

올림픽 축구 조별 예선전에서 이라크가 축구 강호 포르투갈을 이겨서 화제가 되었다. 전후 복구에 지쳐 있던 이라크 국민들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서는 패전국이었지만 경기에서는 승전국이 될 수 있다는 이라크인들의 희망과 기대가 하늘을 찔렀을 만도 하다. 그러나 실상 당시 이 경기를 지켜본 이라크인이 몇이나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다시 한번 고대 그리스의 아줌마들이나 북한 주민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해적방송으로 몰래 올림픽 경기를 보았을 북한의 주민이나 경기장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고대 그리스 아줌마들, 그리고 전쟁에 이은 새로운 정부 수립 이후 '최대의' 혹은 '최악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테러와 공격이 연일 신문의 국제면을 장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맘 놓고 큰소리로 자국 선수들을 응원할 수 없었던 이라크 국민은 분명 '동병상련'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올림픽의 소외된 집단들이다.

'붉은 악마'를 조직해 원정 응원을 하고 거리에 나와 전광판을 보며 마음껏 대표선수들의 활약에 열광할 수 있는 조국을 가진 것만 해도 우린 행복하다. 금메달 9개, 금은동 합쳐 30개의 메달을 딴 우리의 올림픽 종합순위는 9등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호주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8개국이 앞섰을 뿐, 영국도 우리보다 뒤진 10위에 머물렀다. 참가한 158개국 가운데 동메달 하나라도 딴 나라는 기껏해야 71개국뿐이다. 북한은 은메달 4, 동메달 5개로 58위다.

금메달의 수와 국가 순위를 교차시키는 일은 물론 행복한 투정이다. 객관적인 상황은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올림픽을 지켜볼 수 있는 나라에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임을 알려 주고 있다. 금메달을 받고도 태극기를 휘날리지 못하던 나라를 이만큼 바꾸어 놓은 우리 현대사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폄훼돼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연세대 교수 사회학과

[2004/09/08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