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사 재구성의 이중 잣대 /유석춘
 
우리의 근현대사 문제를 공부하는 이유로 최근 국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일부러 구해 통독할 기회를 가졌다. 통계와 사진 자료를 활용해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측면에서 이 교과서는 분명 진일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조선 후기에서 개항과 식민을 거쳐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입론에서 이 교과서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왜냐하면 남쪽에서 벌어진 일에는 비판적인 반면, 북쪽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관대하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이중 잣대를 이 교과서는 남과 북의 입장을 병치시키는 방법으로 호도해 얼핏 보면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구체적인 예는 끝이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대목 한 가지만 살펴보자.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수립과 분단(261~267쪽)'이라는 주제에 관한 기술이다. 교과서는 이 주제를 '과연 남북 단독정부의 수립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당시의 국제정세를 애써 외면한 무모한 질문일 뿐이다. 당시 남한은 미군, 북한은 소련군이 진주한 상황에서 통일정부의 수립은 어차피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교과서도 인정하듯이 '세계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도 충돌'하고 있던 것이 당시 국제정세였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해방이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기본적인 사실, 그 결과로 냉전의 최전선에서 해방을 맞아야만 했던 한반도 상황을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

이어 '멀어지는 통일정부의 길'은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자리 잡는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대목도 마지막에 '남한에서 정부가 세워진다면 이는 북한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였다'는 내용을 덧붙여 분단의 원인을 남한의 단정 수립으로 몰아가는 해석을 시도한다.

다음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UN이 제시한 신탁통치에 대한 반응이다. 처음에는 좌우익이 모두 반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좌익이 찬탁으로 돌아선 사실을 교과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신 우익의 단정과 좌익의 통일정부 주장이 대비되며 제주도 4·3 사태가 그 갈등을 집약한 사건으로 묘사된다. 마지막에는 이승만과 김구의 발언을 발췌해 전자는 분단을 조장한 인물, 후자는 통일을 지향한 인물로 그린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또한 분단에 대한 남쪽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예컨대 '대한민국 정부는 곧바로 유엔총회에서 승인을 받았다'에 이어 '그러나 남한만의 정부가 세워진 것은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뜻하였다'고 부연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서다'에서도 남한 때문에 결국 북에도 같은 결과가 등장하게 됐다며 북의 손을 들어 준다.

이 주제의 마지막 단락 '좌절된 친일파 청산'은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은 사회에 남아 있는 일제 지배의 자취를 없애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제 통치에 협력하여 민족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누리던 친일파를 단죄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대숙청과 한국의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대비시킨다.

그러나 4년간의 나치 지배와 35년간의 일제 지배를 어떻게 단순 비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400년에 걸친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지배는 어떻게 청산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친일파 처단에 성공한 북한은 국가 건설 즉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실패했다. 반면 친일파 청산이 미진했던 남한은 이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뭣 하러 친일파 청산을 하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답이 '주민을 굶겨 죽이기 위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연세대 교수 사회학과

[2004/11/24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