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락가락 그네 타는 한나라당
2005/07/04 | 유석춘
 
여론 시장에서 한나라당이 누리는 반사이익이 만만치 않다. 열린우리당 홈페이지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법’ 통과에 협조하지 않은 잘못을 비난하는 네티즌들로 붐비고 있다. 한편 청와대를 다녀온 후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민노당 역시 결국은 열우당의 2중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6월 30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다’(27%)는의견보다 ‘못한다’(64%)는 의견이 두 배 이상 많다는 조사결과를 전하고 있다.

시민사회도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지형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과거 ‘국가를 감시하던’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관변단체’로 전락한 반면, 새로운 우파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여 노무현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있다. ‘뉴라이트 싱크넷’ ‘교과서 포럼’ ‘헌법 포럼’ ‘자유주의 연대’ ‘북한민주화포럼’ 등과 같이 직능별로 전문성을 가진 단체는 물론이고, 지역과 대중 그리고 학생을 상대로 우파의 정신과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단체들이 대거 출현하여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고, 이에 더해 지난 4월 결성된 ‘뉴라이트 충청포럼’ 그리고 6월 30일 김진홍 목사가 상임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출범한 ‘뉴라이트 전국연합’ 및 7월 1일 조전혁 교수가 발족시킨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 등도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공간 또한 ‘오마이뉴스’와 ‘서프라이즈’로 대표되던 좌파지향의 매체들을 ‘데일리안’과 ‘프리존’과 같은 우파 매체들이 가파르게 따라잡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아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치권을 둘러싼 외부환경 또한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은 연일 죽을 쑤고만 있는가. 왜 한나라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 질타의 대상은 당연히 한나라당의 대표인 박근혜를 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그녀가 한나라당의 현직 당대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탄핵의 역풍으로 날개 없는 추락을 하던 한나라당을 원내 121석의 거대 야당으로 거듭나게 한 주인공이 바로 박근혜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 치러진 4/30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에게 23:0 이라는 치욕을 안겨준 장본인도 바로 박근혜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자산을 가진 그리고 그 만큼의 국민적 기대를 받아 온 박근혜 대표는 왜 정국의 주도권 행사를 못하고 있는가.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사조직’ 동원에 관한 내부 문건을 외부에 유출해 자살골을 넣은 여의도연구소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결코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없는 조직관리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또한 당 혁신을 내세워 소위 ‘친박’과 ‘반박’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는 분열의 모습 또한 한나라당 내부가 노선과 이념에 관해 분명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모습이다. 두 경우 모두 한나라당 내부의 구시대적 유물인 분파주의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선 지난 해 말부터 쟁점이 된 4대 악법 즉 ‘신문법’ ‘과거사법’ ‘국보법’ ‘사학법’에 관해 한나라당이 보여준 오락가락 한 대응 행태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신문시장의 점유율 규제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말도 안 되는 악법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원칙을 저버리고 변칙을 받아들이며 악법을 ‘합의’ 통과시켰다. 나머지 악법에 대헤서도 한나라당은 원칙을 무시하고 현실을 빙자해 ‘합의’ 처리라는 타협의 모습을 보여 주었거나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석연 변호사 한 사람이 개인 자격으로 헌법에 호소해 성공한 ‘수도이전’ 저지를 한나라당은 충청도 표심이라는 유혹에 속아 ‘수도분할’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넙죽 받아먹으며 열우당에 협조했다. 주민의 생존권에는 관심이 없고 ‘핵’이라는 공갈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북한을 상대로 한나라당은 열우당과 마찬가지로 ‘상호공존‘으로 원칙을 바꾸려 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기본을 파괴하는 ‘아파트분양원가공개’ 또한 열우당의 ‘공영개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짝퉁 한나라당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두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인 ‘자유시장’ 체제를 부인하는 한나라당의 헷갈리는 모습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와 이를 흔드는 열우당의 좌파적 가치를 오락가락하며 그네를 타는 한나라당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네 타는 한나라당의 오락가락 하는 모습이야말로 박근혜가 이룩한 현실정치의 성취를 갉아먹는 주범이다. 탄핵의 역풍에 맞서 한나라당을 구하고 4/30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의 완패를 만들어낸 박근혜 대표는 이제라도 그네를 타고 오락가락 하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이 선택이야말로 박근혜가 박다르크가 될지 아님 박그네가 될지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이를 위한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