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론] 대통령 '임기 단축 발언'…차라리 한나라당에 입당하라
 


▲ 유석춘 연세대 교수
노 대통령의 생뚱맞은 연정(聯政) 제안, 그것도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대상으로 한 제안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대상으로 한 연정 제안에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명분은 대통합을 위한 정치문화 개선이고, 보다 구체적으론 지역주의 해소가 목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처음에는 선거구제 개편과 권력 분점이 거론되더니 급기야는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고 도는 대통령의 말은 결국 개헌을 위한 애드벌룬임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 측근들은 연정에 대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해 달라고 주문한다.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 온 경력을 근거로 대통령이 통 큰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일이니, 대통령 덕에 국회의원 배지 단 여당은 물론 통 작은 야당 그리고 봉황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참새와 같은 국민들은 그저 따라만 오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황당해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친여(親與) 매체마저‘벼랑 끝 전술’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비판하겠는가.

이왕 진정성이란 말을 사용하니 이 참에 무엇이 정말 진정한 정치인지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집권 여당이 정치를 잘해 민생이 안정되어 있다면 지금과 같은 연정 제안이 필요했겠는가. 성장과 분배가 적절히 조화되어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임기단축 발언이 나올 필요가 있었겠는가.

집권여당이 선거에 승리해 국회의 과반을 차지했을 때,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지역주의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지역주의가 등장해 4·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게 되었단 말인가. 한국 정치의 상수(常數)로 존재해 온 지역주의 문제를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통 큰 정치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지역주의 해소가 정말 대통령의 진정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할 때, 즉 대선 직후나 총선 직후에 이를 거론했어야 했다. 자신이 유리할 땐 일언반구도 없다가 상황이 불리하자 판을 흔들기 위해 지역주의를 거론하고 그것도 먹혀들지 않자 임기 단축이란 극단적인 선택으로 국민을 협박하는 게 과연 진정성이 있는 정치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력이 없다. 만약 정말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정면으로 개헌론을 제기하고 논란에 부쳐 결과를 따르면 그만이다. 당연히 찬·반 여론이 등장할 테고,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할 거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하다면 개헌의 시기와 내용을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 이를 포장해서 싫다는 한나라당을 대상으로 연정의 진정성을 호소하고 국민들을 임기단축이라는 구실로 협박하는 모습은‘올인’이 아니라 ‘스토킹’일 뿐이다.

핵심을 보여주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 정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과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정치로는 정치문화를 끌어올릴 수 없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정서를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는 지역주의 현실을 정치공학으로 일거에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으론 절대 정치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

어지럽고 혼란한 시기에 모처럼 여·야 영수회담이 성사되었다고 하니 부디 이 기회에 국민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편히 일할 수 있는 정치환경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만약 지역구도 타파라는 명분이 정치적 꼼수가 아니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진정한 목표라면 이번 기회에 대통령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에 입당 원서를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때려잡는 정치, 뒤집어엎는 정치, 끝장을 보는 정치, 자해 공갈단 정치는 정말이지 이제 신물이 난다.



유석춘 · 연세대 교수·사회학
입력 : 2005.09.02 18:4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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