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攻·守 뒤바뀐 '색깔론'
 


▲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자유민주주의사회라면 상이(相異)한 개인의 가치와 이념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당연한 일이다. 강정구 교수사건 또한 시민사회 영역에서 벌어지는 이념과 가치의 논쟁 과정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신념과 주장이 순수한 개인의 이념이나 학문을 넘어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의도나 위협을 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 그것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 즉 검찰의 엄정하고도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강 교수 수사와 관련하여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역사상 처음으로 행사한 수사지휘권은 결국 검찰총장의 사퇴라는 불행한 사태를 빚고 말았다. 검찰총장의 사퇴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부당함과 수용 불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행위다. 비록 검찰청법 제8조는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을 부여하고 있으나 이는 수사 과정에 있어서 검찰의 부당한 행위를 지적하고 시정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장관은 법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검찰에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훼손으로 나타났다. 특히 천 장관은 과거 자신이 삭제를 요구했던 수사지휘권 조항을 스스로 행사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저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구속 수사 관행이 문제라면 왜 그 많은 구속 수사 사건 가운데 유독 이번 사건에 역사상 처음으로 지휘권을 행사했는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천정배 장관과 집권 여당은 검찰에 행사한 지휘권을 정치적 외압이라고 비판하는 야당에 대해 오히려 구시대적인 색깔 논쟁을 재현한다고 역공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색깔 논쟁의 공(攻)과 수(守)가 지금은 뒤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집권 세력이 색깔론을 제기해 야당이 피해를 입은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역으로 야당이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여당이 제기하는 색깔론과 야당이 제기하는 색깔론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가. 여당이 하면 부당한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이 하면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야당이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가.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국가적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에 반해 국가가 ‘적화(赤化)’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을 비호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여론과 국민의 평가일 뿐이다. 만약 국민 여론이 야당의 문제 제기가 옳지 않다고 여기면 여당이 입을 피해는 전혀 없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엄청난 득이 될 터이다. 그러나 만약 국민 여론이 야당의 문제 제기에 동의한다면 여당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천정배 장관은 자신의 지휘권 발동을 ‘민주적 통제’와 ‘소수자 인권 보호’라는 명분을 통해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로 연결될 수는 결코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훼손을 목도할 수 없어 대한민국의 국체(國體)를 지켜내겠다는 주장이, 그리고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정치적 개입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비판하는 주장이 왜 수구세력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은 시대가 변하면 훼손되고 무너져도 되는 가치란 말인가.

결국 이번 천정배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장관 개인 혹은 집권 세력의 정치적 이념을 수사지휘권을 이용해 보호하려는 반(反) 대한민국적 발상일 뿐이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 2005.10.19 20:33 27' / 수정 : 2005.10.20 06:3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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