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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정직한 논쟁'이 요청된다 -유석춘(연세대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논문에 나오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표현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학자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는 입장과 공인의 사상 검증은 필수라는 견해가 엇갈리며 우리 지식인 사회는 첨예한 대립에 빠져들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주장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이 좌든 우든 학자로서의 성실한 판단에 기초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학자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검증할 의무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최장집 교수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라는 공직을 맡기까지 보여준 학문적 성실성과 그것에 기초하여 성취한 학술적 업적은 한국의 사회과학자라면 대부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판단에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문제는 두번째 의무인 공직에 대한 사상 검증의 기준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한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적과 대치하고 있다. 분단의 현실이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 제약의 범위를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로 설정해야 하는가.

냉전의 붕괴와 함께 도래한 자유시장 체제의 승리는 이제 세계의 모든 국가를 ‘하나의 시장’이라는 경제 단위로 묶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오직 북한만이 시대 착오적인 계획경제를 고수하며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냉전적인 기준에서 과거와 같이 모든 좌파를 싸잡아 거부할 필요가 없다. 물론 좌파라는 이데올로기에 포함될 수 있는 사상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소위 ‘중도 좌파’라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서부터 옛 소련의 ‘스탈린식 사회주의’는 물론 북한의 ‘주체사상’까지 모두 좌파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좌파의 모습이 이렇게 다양한만큼, 그리고 냉전 체제가 무너진만큼 우리는 이제 좌파를 선택적으로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폭력적인 공산혁명을 지원할 외부의 세력은 이제 북한의 대남 공작 이외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과 스탈린의 철권 사회주의 이론은 역사 속에 박제되어 버렸고 사유 재산을 부정하며 폭력혁명을 수출하는 공산당의 독재는 이제 지구상에 북한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유일한 좌파는 시장경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노선뿐이다.그리고 이들의 관심은 한국 사회 내부의 폭력적인 공산혁명을 지원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한국 경제의 개방을 틈타 한푼의 달러라도 더 벌 수 있을까 하는 실용적인 관심뿐이다. 객관적인 조건이 이러한데 남한이 냉전의 유산을 답습할 까닭을 찾을 수 없음은 명백하다. 오히려 우리는 다양한 좌파 노선에 대한 선택적인 평가를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선전과 선동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폭력혁명이 불가피하다는 비민주적인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직자에게 허용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를 최대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에 대한 사상 검증의 기준이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탄력적으로 적용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진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최 교수가 사상적으로 어떠한 입장인지를 정확히 판별해내는 일이다. 나는 그가 북한의 노선을 따르는 주사파와 같은 좌파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리고 일부 ‘진보적인’ 시민 단체가 주장하고 있듯이 좌파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나는 그가 유럽식 중도좌파 즉,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신봉하는 학자라고 확신한다. 최 교수는 이 사실을 숨기지 말고 사상 검증에 당당히 임해야 한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학자가 시중의 잡배같이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최 교수의 솔직함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두꺼운 냉전의 얼음을 깨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다.

만약 최 교수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80년대 이후 양산된 남한 좌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추종자들은 계속해서 어둠의 자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햇볕은 남한에도 필요하다.

<柳錫春·연세대 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1998/11/16    |   기사 저장 시간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