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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시민운동단체 재정독립부터 -유석춘(연세대 교수)

우리는 사회를 서로 구분되는 세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강제력의 문제를 다루는 ‘정부’부문이다. 이 영역의 특징은 권력의 행사를 통해 타인의 의지를 합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군대와 경찰은 이 영역의 기능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강제력의 합법적인 장치다.

둘째는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이해 관계를 기초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교환하는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특징으로 한다. 기업의 영리 추구는 물론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셋째는 앞의 두가지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 사회의 나머지 기능, 즉 강제력을 바탕으로한 권력 관계도 아니고 영리를 목적으로한 이윤 추구도 아닌, 인간의 다양한 행동이 표출되는 사회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비정부 비영리 영역’ 혹은 ‘제3의 영역’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이 공간은 사람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 조직, 학교,가족,시민단체, 연고집단 등이 바로 이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세 영역은 서로 다른 발전의 궤적을 밟아 왔다. 우선 ‘시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동질적인 모습을 보이며 발전해 왔다. 시장의 경우 특히 최근에는 나라의 경계를 허물며 통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라는 흐름은 바로 시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가 국경을 뛰어넘으며 전개되는 현상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시장 다음으로 동질적인 모습을 보이며 발전해온 영역은 ‘정부’다. 편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권력이 ‘민주화’라는 대세를 거역하면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다. 80년대 이후 많은 국가에서 군부 통치가 퇴조하고 대신 선거에 의한 민간정부가 수립돼 왔다. 한국·대만·필리핀·태국 등이 예가 된다. 또한 1989년부터 시작된 공산권의 연쇄 붕괴도 크게 보면 전세계적인 민주화의 추세를 강화하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의 민주화는 이제 필연의 경향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앞의 두 영역과는 달리 ‘비정부 비영리 영역’은 동질화와 이질화를 동시에 보여주며 우리의 혼란을 유도하고 있다. 한편으로 학교 교육과 같은 측면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는 거의 유사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이 영역의 동질화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종교와 같은 신앙 생활의 측면에서 이 영역은 수렴은커녕 오히려 간격을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바로 이러한 이질화의 맥락을 강조하는 개념일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쇠고기를 먹으면 안 되고, 또 어느 나라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과 같은 문화적 규범이 갈등하는 곳은 바로 이 ‘제3의 영역’이다. 서로 다른 생활 양식과 관습, 역사와 문화, 제도와 선호로 인해 이 영역은 우리에게 엄청난 혼란과 갈등을 제공하고 있다. 더구나 이 혼란은 기독교와 유교 혹은 회교와 같은 인류의 위대한 가르침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손쉬운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재야 출신 정치인들이 권력의 핵심에 포진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대학에서는 ‘시민사회단체학과’라는 전공을 대학원에 설치키로 하였다. 서구와 같은 시민사회의 건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제3의 영역’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분명 우리가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할 대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시민운동이 과연 ‘정부’나 ‘시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으냐 하는 쟁점이다. 시민운동단체는 조직의 특성상 회원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해야만 한다. 만약 시민운동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정부의 ‘세금’이나 시장의 ‘이윤’에 의지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시민운동단체는 더 이상 ‘비정부 비영리 영역’에 속하는 범주로 존재할 수 없다.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과연 시민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민운동이 산업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공공의 이해를 대변하고 국가를 견제하는 기능과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재정적 독립이다. 최근의 여러 움직임, 특히 시민운동의 형식을 갖추어 추진되고 있는 ‘제2건국운동’이 국민적 우려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석춘·연세대 교수. 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1999/01/07    |   기사 저장 시간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