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오피니언 스포츠 국제 인물 기획/특집
전체기사  |  지면보기(PDF)  |  네티즌광장  |  내폴더  |  회원가입  | 

- 자녀들 영어고민 ‘끝’

- 전화요금 청구서 이메일로 받자
  사설
  포럼
  시론
  데스크시각
  지구촌전망대
  푸른광장
  오후여담
  여론마당
  취재수첩
기사리스트
[시론]칼럼니스트

홍정기 논설실장
김성호 논설위원
김광원 논설위원
황열헌 논설위원
이신우 논설위원
윤창중 논설위원
박광주 논설위원
김회평 논설위원
해외의 젊은 시각

Jon Wolfsthal
John Feffer
마 샹우
리둔치우
유재상
home > 오피니언
스크랩 돌려보기 프린트
<포럼>
'자유민주주의'우리에 맞나-유석춘(연대교수)

지금껏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을 강조하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궁극적인 정치발전의 모델로 삼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가 과연 역사적 배경이 다른 사회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 왔다. 그것은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서구적인 가치를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는 법률에 의한 지배의 확대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정권의 교체를 반드시 이룩해야 할 정치적인 과제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87년의 민주화 이후 세 번에 걸친 자유로운 선거에 의한 정권의 교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 차차 드러나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제도의 변화나 선거를 통한 민주적인 정권교체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선거 때만 되면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는 지역주의, 나 자신의 주변만을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 능력보다는 출신학교나 지역을 우선하는 학벌주의 등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역대 선거에서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역주의적 투표행위는 이러한 연고집단의 역할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또한 ‘서울대의 나라’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학연의 영향력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는 국가부문에만 한정되지 않고 있다. 시장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는 연고집단의 영향력은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의 조직방식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사회에서 연고집단의 영향력은 전혀 약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인식해온 바와는 달리 연고집단의 영향력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쇠퇴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고 있음을 거꾸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자본주의가 확대되어가는 과정이든, 정치적인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이든, 혹은 문화적인 영역에서 합리성이 신장되어가는 과정이든 서구의 보편주의적 기준으로 우리사회를 진단하는 작업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사회의 문화적 및 제도적 특수성과 그 속에서 강하게 기능하고 있는 연고집단의 영향력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이에 걸맞은 사회의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서구의 자유주의적인 전통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우위에 토대를 두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사회의 개인에 대한 우위를 강조해온 문화 속에 살아왔다. 서구의 자유주의적 전통은 개인이 국가권력 혹은 타인의 부당한 강압이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행위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이상으로 추구해왔다. 반면에 우리의 유교적 전통에서는 주어진 윤리공동체의 객관적 도덕규범에 자기 내부의 도덕을 일치시키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왔다.

서구가 부당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소극적이고 부정적 인 자유를 추구해왔다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다스려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규범에 부합하려는 적극적 자유와 자기성찰 및 자기절제 등의 방법을 통해 타인을 인정하는 긍정적 자유를 추구해왔다. 이러한 보다 확대된 자유에 대한 개념과 개인과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대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원자론적이며 추상적인 자유주의적 인간관에 기초하여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우리는 공허한 보편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관계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을 강조하고, 집단 전체의 복지와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공동체적인 유산이 강하게 살아있는 문화적인 전통을 고려한다면, 서구적인 의미의 시민권 신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민주주의적 발전과정이 결코 단선적인 하나의 과정이 아니며 각 사회의 발전과정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가 혹은 집단이나 사회의 권리를 중시하는가에 따라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내용이 다양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소극적으로 문화와 사회적 규범의 차이만을 인정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공동체적 전통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석춘 연세대사회학 교수>
기사 게재 일자 1999/02/19    |   기사 저장 시간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