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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외곬 세계화'의 함정-유석춘(日 同志社大교수)

세계화를 한다고 법석을 떨기 시작한지도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법석의 절정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던 1995년 전후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전격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여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이를 근거로, 국민들은 한국이 다가오는 21세기에 세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란 정부의 선전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경제의 산업화에 이어 정치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앞으로 남은 일은 문화의 세계화를 이룩하는 일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2년 후인 1997년이 되면서 사정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김영삼 정부의 국정운영은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난 사실을 알지도 못할 정도로 방만한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TWO)체제의 출범과 함께 불어닥친 시장개방 압력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정부는 민주화를 틈타 제몫찾기에 골몰하고 있던 노·사의 대립에 끌려다니며 우유부단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과 함께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는 구호만 남기고 실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달러의 부족으로 시작된 외환위기는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국민소득은 반토막으로 줄었고 기업은 줄줄이 도산하며 실업자를 양산하였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던 1998년이 되면서, 한국은 어느 구석을 둘러보아도 세계화라는 단어에 걸맞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문이 존재하지 않는 3류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새 정부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정치는 여전히 4류에서 질퍽거리고 있고,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경제력 집중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마당에 문화의 세계화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없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 돌보느라 정치·문화 뒷전



세계화란 무엇인가. 여러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인권과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권력관계의 구축일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값싸고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의 확보일 수 있다. 문화적으로는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차원적인 측면의 여러가지 기준이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있게 자리잡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는 빵만 주고 자유가 없는 개발독재나 획일화된 사회와 같은 기형적인 모습의 사회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IMF의 개입을 초래한 이후 한국은 경제적 경쟁력 확보에 온 힘을 쏟아 왔다. 금리를 높여 채산성 없는 기업을 퇴출시키고, 실업자 재교육을 통해 인적자원의 수준을 높이고, 낙후된 금융제도를 개선해 벤처기업에 자금이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 왔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혼신의 힘을 다해 기울인 노력은 모두 경제의 경쟁력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다.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외환부족이니만큼 경제적 경쟁력의 확보가 중요한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의 다양한 영역이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사회의 나머지 영역은 그대로 놔두면서, 경제적 경쟁력만을 위해 기업과 금융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세계화의 입체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최근 좌초한 정부의 조직개편은 그래서 세계화의 높은 파고를 넘어야 하는 한국의 장래가 여전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새 정부가 환율이나 금리와 같은 몇 가지 단기적인 경제지표의 개선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세계화를 위한 개혁을 소홀히 한다면 한국의 세계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경제동물’ 日침몰 돌아보길



세계화는 경제적 경쟁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동물’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던 일본의 침몰은 바로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보수정당의 장기집권과 집단지향적인 문화에 의해 성취된 일본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나머지 영역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교토에서 유석춘·日 同志社大교수/ 연대교수>

기사 게재 일자 1999/04/15    |   기사 저장 시간 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