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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위성방송, 문화전쟁 새 場-유석춘(연대교수)

오늘날 TV 방송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매체로 자리잡고 있다. 화면에 나오는 한장의 그림은 열마디 백마디 말보다 정확한 진실을 전해 준다. 발칸반도의 비참한 코소보 난민,미국 오클라호마주 고교생의 총기난사,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떨어진 화물기의 처참한 잔해, 명동성당의 노조시위, 조계사의 법난 등을 TV 화면 없이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뉴스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TV의 위력은 이미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TV앞의 인질로 만들어가고 있다. TV의 위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보도는 아마도 CNN이 특종을 한 미국의 걸프전 소식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는 참혹한 전쟁을 CNN은 마치 전자오락의 한 장면같이 전세계의 안방으로 전했다. 그 화면에는 살점이 떨어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그 화면을 통해 미국은 상상에나 존재하는 우주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가상게임의 주인공과 같이 이라크를 제압할 수 있었다.

공중파 방송에 이은 케이블 방송과 위성 방송의 도입으로 TV 매체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히 비싸지 않은 가입비와 함께 우리는 약 30개에 달하는 케이블 채널을 즐길 수 있다. 또 접시모양의 수신기만 달면 우리는 전세계의 위성 TV를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다. 인터넷을 타고 흐르는 동영상은 TV의 영향력이 다가오는 21세기에도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을 뿐이다.

‘TV화면=객관적사실’착각



하루하루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는 TV앞에,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 그리고 오락을 제공받기 위해 매일같이 앉아 있다. TV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에 침투하여 우리를 TV문화의 소비자로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TV 프로그램의 일방적인 소비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TV 화면이 제공하는 정보가 객관적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기록이라는 신념에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아 왔다.

그러나 소비자가 있다면 그 반대쪽에는 반드시 생산자가 있다. TV 화면에 잡히는 그림의 생산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이를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노사분규는 항상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사건으로 인식되어 왔고, 나토의 유고 공습은 세계평화를 위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TV가 제공해 준 화면이 담고 있는 가치의 지향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한국의 KBS와 MBC 그리고 SBS가 각각 어떤 성격의 방송인지를 구분하면서 TV를 보는 사람은 분명 많지 않다. 그로부터 더 나아가 미국의 CNN과 일본의 NHK 그리고 영국의 BBC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왜 전세계를 상대로 위성방송을 송출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

국경을 초월하여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위성방송이, 과거의 식민지 쟁탈을 위한 군비경쟁과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치열한 문화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시청자는 거의 없어 보인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TV 방송이라는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상품인 이상 우리는 시장 지배력이 강한 국가의 상품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의 소식을 전세계에 전하는 미국의 CNN은 그래서 가장 강력한 미국적 가치의 전파자가 된다. 우리가 CNN을 시청하면서 걸프전을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이 아니라 재미있는 전자오락과 같이 생각하게 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방송의 국제적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만약 우리가 이라크의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주룽지(朱鎔基) 중국총리의 미국 방문도 마찬가지다. 베이징(北京)과 타이베이(臺北)의 TV가 화면에 담은 내용은 완전히 반대였다.

자국가치 세계전파 첨병역할



우리 나라가 위성방송을 위해 통신위성을 쏘아 올린지는 이미 여러해 되었다. 위성방송을 위한 제도의 정비와 통합도 오랜 기간 준비하여 왔다. 비록 지금은 정치권의 정쟁으로 인해 방송의 국제화가 발목을 잡히고 있는 상황이지만, 본격적인 위성방송 시대의 도래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위성방송 프로그램의 국제화와 경쟁력이 방송을 위한 기술의 확보와 제도의 정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편성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한국이 세계를 상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넘어야 할 문화적 난관은 끝이 없어 보인다.

<교토에서 유석춘·日 同志社大 객원교수·연대교수>
기사 게재 일자 1999/05/10    |   기사 저장 시간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