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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박정희'이젠 극복하자-유석춘(연세대교수)
박정희육군소장이 5.16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것은 1961년, 그리고 자신이 임명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진 것은 1979년 10월 26일이다. 그러니까 박정희전대통령은 만 18년동안 통치권을 행사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다시 18년동안은 누가 통치권을 행사했는가. 세 사람의 대통령이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씨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1980년부터 1998년까지 18년동안 이끌어왔다.

박정희시대 18년과 그의 사후 18년을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역사는 항상 누적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늘의 시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 전혀 쓸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더욱 없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에 대한 평가라는 오늘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는 오늘이라는 고리로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재설계되기 때문이다.

18년동안 권력을 행사한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근대화를 이룩한 지도자라는 긍정적인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을 억압한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렇다면 그의 사후 18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전체적으로 보아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보다 후한 점수를 주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전두환 다음대통령은 박정희시대를 넘어서는 치적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노태우 그다음 대통령은 민주화를 수용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주도했느냐는 부분에서 부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영삼전대통령은 민주화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부정적이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보아 뒤의 18년을 앞의 18년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기준에서 현재의 김대중 대통령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우선 그는 임기를 1998년 2월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박정희 사후 18년이라는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즉 그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씨보다 멀리 떨어져 박정희시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미 자신에게 붙어 있는 평가, 즉 민주화의 지도자라는 평가에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덧붙일 수만 있다면, 박정희시대를 극복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김대중대통령의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자라는 발언과 더불어 기념관 짓는 일을 정부차원에서도 돕겠다고 나섰다.

일부에서는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는 폄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파격적인 발언임에 틀림없다. 비록 집권은 늦게나마 했지만 김대통령은 박정희시대 최대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박전대통령에 대한 발언은 특히 요즈음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간의 말싸움과 대조가 되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 박정희 사후 18년을 주도했던 대통령들이 서로를 ‘주막강아지’ ‘골목강아지’ ‘무능한 사람’ 등과 같이 원색적인 용어로 비난하며 흠집을 내고 있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죽은 박정희전대통령마저 기가 찰 노릇이다. 자숙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정희 18년, 그리고 박정희 사후 18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까닭은 그 결과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무덤에 침을 뱉든지, 혹은 기념관을 세우든지 그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어떠한 선택이 되었건, 이제는 죽은 박정희를 다시 살리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미 우리는 박정희전대통령이 통치했던 만큼의 세월, 아니 그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계속해서 무덤속의 그를 기준으로 지도자를 평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거꾸로 현재의 지도력이 박정희의 지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뿐이다. 오늘의 지도자인 김대중대통령은 무덤속의 지도자인 박정희를 국민들이 다시는 생각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 한 3국은 통일되지 못했다. 그리고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은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석춘 연세대교수>
기사 게재 일자 1999/05/22    |   기사 저장 시간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