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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정치도박과 재벌
김대중 대통령은 현재 정치적 도박을 하고 있다. 이념과 노선이 다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조를 포기하고, 대신 ‘대중경제’라는 자신의 철학을 따라 신당을 창당하고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지난 대선의 최대 쟁점이자 현정권의 존립기반인 내각제라는 대국민 약속을 팽개쳐 버렸다. 지역연합에 의한 공동정권이라는 부담과 한계를 계속 짊어지느니 차라리 독자 노선을 선명히 하여 심판을 받겠다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 도박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내선 총선이 신당의 승리를 보장하는 결과로 나타날지는 현재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회의의 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신당의 문호를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도 높은 경제적 재분배 정책을 채택함으로서 지지세력의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이러한 내부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다.

그야말로 ‘제2의 건국’을 방불케 하는 장문의 축사를 통해 대통령은 국정의 모든 분야에 대한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물론 가장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재벌에 관한 언급이었다. “시장이 재벌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라는 표현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표현은 국민의 관심을 붙들기에 충분한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연이어 발표된 금융실명제의 재도입 결정 및 세제개혁의 내용도 성장보다는 재분배에 초점이 맞추어진 보완책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이 앞으로 재벌의 완전한 해체로 이어질지, 혹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개혁에 머무를지는 현재로서 불확실하다. 정권 내부의 이념적 이상론자들은 해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고, 현실주의자들은 개혁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부의 논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정리될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현재로서 확실한 일은 앞으로의 경제정책이 성장보다는 재분배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란 사실이다.

분배정책 국제경쟁력 불리


이 선택은 과연 내년의 선거를 위한 전략으로 유효한가. 자본의 이동은 자유롭고 노동의 이동은 제한된 현재의 반쪽 글로벌 경제에서, 국민경제가 성장보다는 재분배에 집착한다면 그 결과는 국제경쟁력의 약화로 나타날 뿐이다. 수출은 줄고 수입은 증가한다. 또한 일자리는 줄어들고 복지예산은 증가한다. 따라서 국가의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그렇다면 인플레를 동반한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된다. 결국 재분배정책은 서민층으로부터의 단기적인 인기는 얻을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국가경제의 발전에는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에 대한 선택이 개혁이 되었건 해체가 되었건,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의 결과로서 나타날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중산층 중심의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이상적인 구호일뿐, 구체적으로 도래할 현실은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자원이 빈약한 한국경제는 수출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가 수출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하는 데 재벌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상품의 제조는 물론 원료의 구입및 판매와 같은 유통과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 등을 선단식으로 결합한 조직상의 특징으로 인해 재벌은 시장의 거래를 내부화하며 거래비용을 줄일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조직상의 특성으로 인해 재벌은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재벌의 방만한 차입경영이지 기업의 조직방식 자체는 아니다.

기업조직이 국가마다 달라


김대중 대통령의 신념과는 달리 시장과 재벌은 얼마든지 양립이 가능할 수 있다. 화인자본(華人資本)의 조직특성인 ‘콴시(關係)’가 개방경제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드러내고 있는 사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일본식 경영이 비록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누가 무어라해도 일본은 여전히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마하티르의 말레이시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무시하고도 경제를 살리고 있다. 왜 미국식 경영만이 대안이 되어야 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정책이 다가오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포퓰리즘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구멍가게로는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柳錫春·연세대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1999/08/20    |   기사 저장 시간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