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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東티모르 파병과 인권
전투병력의 해외파병 결정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옹호하는 쪽은 파병이 동티모르의 평화유지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택한 동티모르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은 지구촌 인권공동체의 의무이기 때문에, 한국도 이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더 중요한 문제도 많은데…


좋은 말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고 하는데 누가 반대할 수 있는가. 그러나 문제는 국제 및 국내 정치의 현실이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름아닌 형평성의 문제 때문이다. 국제적 및 국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동티모르 민병대에 의한 주민 학살이 문제라면 얼마전 유고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또한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 보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 소말리아의 내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영국과 아일랜드의 분쟁 등 이데올로기, 종교, 그리고 인종적 갈등으로 인권이 부정되어 온 사례는 무수히 많이 찾을 수 있다.

찾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역사는 이러한 갈등의 연속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왜 유독 동티모르에만 파병을 해야 하는가. 논리적으로는 코소보와 소말리아에도 파병했어야 한다.

만약 한국이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의 경찰국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한국은 결코 세계의 경찰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는다. 경찰국가는 커녕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어려운 국가인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형평성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권의 문제를 국제사회로부터 한민족 내부로 좁혀 보아도 우리는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는 우리와 대치상태에 있는 북쪽 내부의 일이니 일단 접어둘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굶주림과 정치적 보복에 떨고 있는 중국의 탈북동포, 정치적 및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일본의 우리 동포, 흑인들의 집단폭력에 시달리는 미국의 교포 등 한민족 내부의 인권 또한 형평성의 문제에서 보면 동티모르 주민의 어려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어려운 동포들에게는 왜 파병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제공하지 않는가. 시야를 더욱 좁혀 국내에서의 인권문제를 검토해 보더라도 형평성의 문제는 계속된다.‘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전화를 도청하는 정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정감사는 새 정부가 들어 선 이후 계좌추적이 2배로 늘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정치권과 재계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에 이어 언론사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까지 일고있다. 새 정부 아래에서 기본적인 인권이 정말 잘 보장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왜 국내에서는 파병과 같은 인권보호를 시행하지 않는가.

시야를 뒤집어서 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눈으로 인권을 보더라도 형평성의 문제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른바 3D산업이라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제도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고 있는가를 반문할 때 우리는 자괴를 떨칠 수 없다.

국민납득할 명분-실리미흡


시야를 바꾸어서 터키와 대만이 끔찍한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동티모르 파병과 같이 신속하고도 과감한 지원을 행동으로 채택하였나를 생각해 보면 더욱 부끄러울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두번째의 전투병력 해외파병이 결정되었지만, 이 두번째 파병의 이유를 국민들이 선뜻 납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오히려 첫번째 파병 즉 월남참전에 관해서는 분명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이 참전하라고 해서였고, 또한 돈벌이를 위해서였다. 명분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파병이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파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최소한 우리가 왜 그곳에 가서 죽음을 불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번째 파병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선뜻 이해할 수 없다. 명분의 논리적 일관성도 없고, 미국이 시키지도 않았고, 실리도 없기 때문이다.

<柳錫春·연세대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1999/10/02    |   기사 저장 시간 1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