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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자유방임 경제정책의 한계
연세대교수·사회학
70년대 ‘종속이론’은 이런 주장을 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경제적인 관련을 맺으면 맺을수록 개발도상국의 경제는 선진국 경제에 종속되어 발전은커녕 오히려 저발전한다. 따라서 발전을 하고 싶으면 선진국 경제와의 관련을 차단하고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당시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 아래 악화 일로에 있던 남미의 상황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였다.

종속이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이후 계속해서 개방경제체제를 유지하여 온 대부분의 남미경제는 불행하게도 계속 침몰하여 왔다. 80년대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외채위기를 겪으며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 근근이 경제를 지탱하여 왔다. 지금도 경제적 발전을 확신할 수 있는 남미의 국가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南美실패 되풀이 우려


반면에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이후 약 30년간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다. 종속이론의 주장과는 어긋나는 사례들이다. 여기에 덧붙여 동구와 구소련의 사회주의 경제가 침체에서 허덕이다 결국은 와장창 무너져 버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종속이론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남미와 동아시아는 모두 개방경제체제를 유지했는데 왜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 주었을까.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문화가 다르다는 설명이 한 예이다. 즉 남미는 즐기는 문화를 가진데 비해, 동아시아는 규율을 강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 경제적 성취에 차이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또한 개방경제의 형식이 달랐다는 설명도 있다. 즉 해외와의 연계를 남미는 수입대체 방식으로 유지하였고, 동아시아는 수출주도 방식으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차이가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남미와 동아시아의 차별성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사실 끝이 없이 많은 까닭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정부정책과 연관하여 반드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 있다. 다름아닌 국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 실시 여부이다.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은 모두 시장의 자율적인 의사결정보다는 국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급속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다. 동아시아 국가가운데 굳이 예외를 찾는다면 홍콩만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장의 기능을 유지했을 뿐이다. 반면에 남미의 국가들은 동아시아와 같은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

대기업-中企 병행 육성을


최근 들이닥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잘못된 경제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특히 시장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혹시 시장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국가의 산업정책마저도 포기하는 잘못을 범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뿌리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내외적 여건을 고려할 때 산업정책을 포기하고 지금 당장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인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우선 국내적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을 포기하면 이미 경제적 기득권 집단이 된 재벌의 영향력이 계속적으로 증대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그러므로 재벌의 확대재생산을 막고 중소기업과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국가의 산업정책은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시장기능이 강화되면 우리나라의 재벌이 아무리 거대하다 하더러도 미국과 일본 혹은 유럽의 초국적 기업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제적인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의 산업정책 또한 필수적이다.

따라서 현 정부의 선택은 바로 이 두 가지 대립되는 문제에서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압축된다. 즉 국가는 국내적으로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재벌을 견제하여야 하는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해외의 거대자본과 대결하는 우리의 재벌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역설을 균형 있게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경제는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김대중 정부의 역할은 국내적인 요구에 기울어져 있어, 국제적인 차원에서 요구되는 소임을 방치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의 문제를 시장에 맡기면 결국 남미와 같은 종속으로 치달을 뿐이라는 교훈을 잊으면 곤란하다.

<柳錫春·연세대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2000/01/21    |   기사 저장 시간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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