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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위선의 정치와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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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의 위기가 심각하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은 그것이 어느 특정한 영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치는 정치대로,경제는 경제대로,사회는 사회대로,문화는 문화대로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고,금융권은 또 다시 엄청난 물량의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개혁을 선도하던 시민운동은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고,이른바 386세대에 걸었던 기대는 ‘무늬만 386’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비화되어 버렸다. 나아가서 성을 매개로 한 희롱·추행·폭력이 하루도 빠짐없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가히 총체적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이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정치다. 사회규범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최종적인 장치가 질서의 유지를 담당하는 정치의 기능이다. 그런데 그 정치가 엉망진창이다. 앞 정권에서 부정부패로 몰리던 인사가 다음 정권에서는 공동정권의 총리로 화려한 복귀를 한다.

그 화려한 복귀는 그러나 불과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불명예 퇴진이라는 치욕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사이 공동정권은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어 상대를 바가지로 비난하며 선거를 치르더니,다시금 언제 그랬냐는 듯 가까워진다.

야당의 권력투쟁에서 밀린 인사가 정치적 보신을 위하여 버림받은 공동정권의 한 축에 몸을 의지하더니,다시 그가 공동정권의 화해를 주도하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로 등극한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사회규범 최후보루가 엉망


무엇이 이러한 정치의 기준인가. 이념도 없고 명분도 없다. 실리도 없고 대의도 없다. 세 불리기를 위한 잔머리 굴리기가 고작이다. 고통의 분담을 호소하며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그저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면피’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정권의 최대 관심사다.

정치적 비전과 철학 그리고 소신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때론 시민운동을 관변운동으로 착각하기도 하고,때론 시장의 불안을 바로잡는다며 더욱 개입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강조하고,속으로는 정권 재창출에 더욱 신경을 쓴다. 그러니 “소수의 단결은 선이고 다수의 단결은 악”이라는 궤변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다수의 단결인 지난 선거에서의 영남 몰표는 아마도 선거일 직전에 무리하게 발표한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소식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통치권 차원의 성급한 승부수가 오히려 선거를 불리한 결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선거가 끝나고는 오히려 더 심각한 부메랑이 되어 정권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선거 후 민심의 흐름과 정국의 변화를 반영하는 개각은 당연한 수순임에도 불구하고,역사적인 남북회담의 준비를 위한 정책의 연속성 때문에 이를 당장 시행할 수도 없다. 장기적인 비전의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일 뿐이다.

정치가 이 모양인데 무엇이 제대로 되겠는가.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국회의장을 두 번씩이나 역임한,그래서 한국정치의 원형을 가장 잘 체화한 모델이라고 평가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변신의 귀재’원로 정치인이 은퇴와 함께 남긴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쓴 회고록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민주화를 왜 했는가. 여기서 이말 하고 저기서 저말 하기 위해서인가.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 민주화인가. 노조에도 좋고 기업에도 좋은 정책,국내자본에도 도움이 되고 해외자본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복지에도 기여하고 생산성에도 기여하는 정책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경우 두 마리 토끼 가운데 하나도 잡기가 쉽지 않다.

사탕발림 정책이 갈등 부추겨


그래서 두 마리,심지어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정책은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해도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람도 만족시키고 저 사람도 만족시키는 사탕발림의 정치는 일시적으로 표를 모으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해의 갈등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독재와 같이 싸울 대상이 분명하던 때의 정치보다는 민주화된 세상의 변화하는 갈등이 오히려 정치를 더욱 위선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민주화는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고통의 분담을 호소할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을 필수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요란한 개혁구호는 외화내빈의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유석춘,연세대 교수>
기사 게재 일자 2000/05/31    |   기사 저장 시간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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