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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국민이 고달파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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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가 이루어진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87년 노태우 후보의 6ㆍ29 선언을 기준으로는 13년, 93년 문민정부의 출범을 기준으로는 7년이 경과했다. 어느 기준을 따르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 사이 우리는 많으면 세 번 혹은 적어도 두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했다.

민주화에 따른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중요한 성과는 우선 인권의 대폭적인 개선을 들 수 있다.

‘정책결정 전문성’ 아쉬워


불법적인 고문과 감시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일이 과거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학원이나 언론에 대한 정부의 사찰도 최소한 물밑으로 숨어들었고, 국민들은 보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머리가 길다’ 혹은 ‘치마가 짧다’는 이유로 연행을 당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러면 민주화가 된 이후로 국민들은 예전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이 문제는 상당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서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는 97년의 경제위기가 민주화 때문이냐’고 질문한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민주화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약분업과 같은 혼란 또한 민주화 이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국민생활의 불편이다.

그렇다면 ‘민주화’와 ‘경제발전’ 혹은 ‘사회안정’은 서로 결합될 수 없는 일인가. 불행하게도 한국은 아직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집단 이기주의에 따른 ‘의견대립’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아무도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위기의 한복판에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이윤추구’와 국가적 필요에 따른 ‘시장개입’ 가운데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오락가락하기는 매한가지다.

구분이 애매하니까 다시 권위주의로 회귀하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화에 따른 정권의 교체가 국민들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 측면이 전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왜 한국에서는 민주화가 국민생활의 불편과 연결되고 있는가. 민주주의와 질서 그리고 경제적 번영은 동시에 잡을 수 없는 토끼들인가.

우리가 민주화를 이룩한 배경에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추진된 경제개발계획이 상당한 역할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적 목표의 효율적 달성을 위한 치밀한 기획과 일사불란한 집행이 없었다면 산업화를 가져온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전문성에 기초한 기획과 집행이야말로 한국이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산업화의 심화라는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정치적 정당성’만으론 한계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자라는 중산층은 ‘계획과 통제’보다는 ‘자유와 주장’을 선호한다. 위로부터의 지시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자율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중산층의 생리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변혁을 산업화의 다음 과제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정치적 정당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경제적 전문성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복잡한 산업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집단이기주의의 무절제한 추구와 민주화된 정부의 취약한 지도력 사이에는 미묘한 영합관계가 발견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부의 정당성이 취약했던 만큼, 국민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전문성 에 의한 문제해결의 비중이 높았다. 어쩌면 산업화 시대의 권위주의 정권은 민주적인 정당성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욱 더 정책적 의사결정에 전문성을 추구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즈음 민주화된 정부에서는 ‘정당성’을 가진 만큼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한 집단이 정치권의 전면에 포진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집단의 의견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성을 가진 정부가 국민건강을 위해 의약분업을 하자는 데 의사와 약사의 이해관계가 무슨 대수냐”는 식의 밀어붙이기가 정책결정의 주류를 이룬다면 사회 각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국가의 역할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노·정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금융권의 구조조정 또한 정당성만으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柳錫春 연세대 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2000/07/04    |   기사 저장 시간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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