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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살아 숨쉬는 쌍방향 정치를
.
고객을 상대로 하는 기업의 안내전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를 들어 이동통신회사의 민원을 담당하는 부서에 전화를 걸면 다음과 같은 상냥한 목소리의 자상한 안내를 언제나 들을 수 있다. “안녕하십니까. ○○ 텔레콤 회사의 고객센터입니다.

가입하신 고객은 사용번호와 별표를, 가입하지 않으신 고객은 별표를 눌러 주십시오.” 상냥한 목소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의 민원내용에 따라 0부터 9까지의 번호를 골라서 누르라는 안내가 이어진다. “나만의 통화내역 즉시 확인은 1번, 납부방법 및 요금제도 안내는 2번, 부가서비스 안내는 3번,….” 이러한 변화는 비단 기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학에 전화를 해도 같은 방식의 안내에 접하게 된다. “입시와 관련해서는 1번, 학사와 관련해서는 2번, 증명서 발급은 3번,….” 민원이 많은 공공부문도 마찬가지 형식의 안내가 봇물을 이루고있다.

대면적인 의사소통보다는 미리 분류된 범주를 통해서 민원을 구분하고, 또한 그에 상응하여 미리 마련된 해결책을 고객에게 제시하는 방식은 대중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된 삶의 방식과 잘 조응하며 세계화 시대의 보편적인 생활양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한 효율성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이보다 더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면 사려 깊게 준비된 녹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고객은 소비자로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을 과연 갖게 되는가. 이런 안내에 접하면 고객은 우선 긴장한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녹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민원이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지를 열심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아무리 긴장을 하더라도 자신의 민원이 어느 범주에 해당되는지를 분명하고 자신 있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망설임 끝에 마지막에는 “에라 모르겠다”라는 혼자말과 함께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판에 박은 행태에 국민 피로감


이러한 긴장을 거치고라도 녹음된 안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의 긴장과 곤혹이라는 비용을 통해 원하는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인간대 인간이 의사소통을 해야하는 번거로운 격식과 절차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의 명령에 잠시 따르는 대가로 우리는 신속한 문제해결을 보장받고 그만큼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녹음을 통해 문제해결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리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라고 하더라도 녹음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없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인내심을 갖고 가능한 모든 선택을 시도하지만 결국은 전화기를 집어던지게 된다.

시간과 노력의 낭비는 제쳐두더라도 우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타격을 받아 씩씩거리지 않을 수 없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킬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 또한 더욱 사람을 열받게 한다.

이럴 때 ‘상담원과의 연결’이라는 최후의 선택이 흘러나오면 고객의 심정은 이도령 만난 춘향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역시 기계보다는 인간이 좋다”라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상담원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을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또 한번의 고비가 찾아온다. 인간일 줄 알았던 상담원의 목소리가 승강기 안내양의 “올라갑니다”와 비슷한 판에 박힌 말투임을 발견하는 순간, 고객은 차라리 녹음된 안내가 더 편안하다는 역설적인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상담원의 마지막 비음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는 고객의 마음은 그래서 전혀 즐겁지가 않다.

선택 강요 말고 합의로 개혁을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광고문구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박제된 친절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친절을 고객이 선호하는 까닭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살아 움직이는 정치를 원한다. ‘준비된 대통령’의 개혁 프로그램이 미처 소화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국민은 ‘상담원과의 연결’을 바란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부의 상담원들이 승강기 안내양과 같이 판에 박힌 행동을 한다면 고객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는다.

살아 움직이는 쌍방향 정치를 통해 국민의 요구가 그때그때 전달되고, 또 그때그때 해결될 수 있을 때 국민들은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보다는 국민과의 대화를 통한 개혁이 필요한 까닭이다.

<柳錫春 연세대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2000/08/10    |   기사 저장 시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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