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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문화와 함께 가는 개혁을
유석춘기자
최근 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우리는 법과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또한 고치는 일에 아주 이력이 나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사회의 모든 구석을 개혁의 조명아래 수술해 왔기 때문이다. 정당, 재벌, 공기업, 노·사관계, 학교, 금융 등 어느 곳 하나 개혁의 칼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판단이 있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열심히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정작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한 해 계속해서 국민을 괴롭혀 왔던 ‘의·약분업’이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한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톡톡히 치렀지만 결국은 ‘새로운 개혁을 완성했다’라는 자신감이나 성취감은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특정한 하나의 법과 제도는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법과 제도는 주변의 여러 연관된 법과 제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에 포위되어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의·약분업’의 경우를 분석해 보자.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하나의 독립된 개혁 자체의 내용을 탓하는 의견은 없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기존의 의료보험제도 및 그에 따른 수가체계의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랑 한가지 사안을 바꾸어서는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가 불가능하다. 또한 아무 약국에서나 마구잡이로 약을 사 먹는 우리의 기존 약문화와도 이 제도는 충돌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어느 개혁이건 특정한 한가지 사안의 법과 제도를 고치는 일로 개혁은 완성되지 않는다.

법·제도와 일관성 유지해야

따라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각 층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성물들간의 관계가 서로 양립가능한가, 그리고 또한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문화와 제도, 그리고 법 사이에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일관성이 없다면 일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작업 없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예컨대 한국의 기업문화와 정리해고라는 미국식 경영은 양립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구조조정을 할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법<제도<문화’라는 부등식으로 이 셋의 관계를 이해한다. 즉 ‘문화’는 가장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동시에 다양한 생활양식과 관련된 문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제도’는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특정한 유형의 생활양식이라고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법’은 그렇게 반복적으로 유형화된 생활양식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정리한다. 따라서 이 셋의 관계는 각각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를 뿐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가질 수 없는 관계다. 문화의 최대 공약수가 제도이고, 제도의 최대 공약수가 법이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는 사회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한다. ‘문화’는 사람들의 의식에서부터 비롯되는 현상이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음식을 즐기는가 하는 취향의 문제가 바로 문화이다. 개인을 단위로 보면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의 축적된 경험이 문화적 지향을 구성한다. 그리고 국가를 단위로 보면 역사의 누적된 경험이 문화적 지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문화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관리하는 대상이기보다는 숙명적으로 주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괴리감 메워 접점 찾아야 성공!

반면에 법과 제도는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 현실적으로 우리의 주체적 판단에 따른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제도는 새로 만들고 또한 고치는 작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용이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는 법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리잡고 있는 전후 좌우 상하의 맥락을 소홀히하면 그러한 개혁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최근 병원마다 도입하고 있는 새로운 영안실 접대문화는 이러한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와 개혁의 관계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서구적 제도인 병원과 전통적 장례문화를 접목시킨 이 새로운 장치는 한국인의 문화적 취향에 기초해 있으면서 동시에 근대적인 서구의 병원이라는 제도와 잘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했다. 문화와 제도의 간격이 있다면 문화를 바꾸든지 혹은 제도를 바꾸든지, 어찌됐든 두 가지의 접점을 찾아야 개혁이 완성된다.

<유석춘·연세대교수·사회학>

기사 게재 일자 2001/01/01    |   기사 저장 시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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